나는 귀찮음을 많이 느끼며,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 귀차니즘 환자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할지 모른다. 지금껏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하면서도, 물불 안 가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노력한 사람이기에 그런 반응일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물론 이는 나의 망상일 수도 있다).
변명을 하자면, 모든 생활이 귀찮지는 않다. ‘비본질’ 로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 참 귀찮을 뿐.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거다. 방 정리하기 귀찮아서 내 방은 늘 어지럽혀져 있다(엄마가 치우지 않으셨다면). 반면 대학원 내 연구실 자리는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깔끔하다. 학업을 위해 본가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나에게, 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다. 때문에 숙면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지저분함을 허용한다. 그러나 연구실 자리는 현재 내 삶의 본질인 공부를 할 장소이므로 언제 어느 때나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항상 정돈해 놓는다.
이런 성향은 뒤집어 말하면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저것 귀찮은 일들이 싫기에 단순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비본질적인삶의 가지치기라 부른다.삶에서 비본질적인 것이 어디 있느냐, 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어 용어를 정정한다. 비본질적인 것 = 우선순위가 낮은 것. 내게 단순한 삶이란 후순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요즘 나의 가지치기 대상은 영화, 축구경기, 드라마, 맛집 등이 있다. 재미있고 의미 있지만, 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나는 부수적인 것들을 제하고, 삶에 집중함으로써 즐거움과 희열을 느낀다. 아프리카 교환학생, 여행, 노가다, 해외 인턴 등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단순하게 몰입하는 삶을 살며 꽤나 즐거웠으며, 특별한 경험들은 유쾌한 추억으로 남았다.
한동안 내게 중요한 우선순위는 ‘글쓰기’ 였다. 이유는 꽤나 명료하다. 글을 쓰는 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말했듯, 머리를 싸매며 타자를 치는 순간이 좋고, 고통의 결과인 문장이 바로 보여 뿌듯하며, 독자가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짜릿하다.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고자 재미있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고, 글에 집중한 나는 최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으니, 바로 아내의 근심이다. 우리는 주말부부이기에 일상생활을 나누기에 한계가 있다. 나의 왕성한 집필활동을 두 달 반 동안 멀리서 관찰한 아내는 어린 남편이 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있구나!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나로서는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중간 성적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기에 수긍이 된다. 글로 인해 공부가 가지치기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상황이 이러하니, 과감히 휴재를 선언한다.
구독자 100명도 채 안 되는 소박한 브런치 작가지만, 그래도 내 뻘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기에 이렇게 짤막한 글로 감사한 마음을 올리고자 한다. 글을 한번 제대로 써보자! 호기롭게 시작했던 브런치이지만, 변변치 못한 글이기에 부끄럽기도 하다. 예전의 글을 다시 읽자니, 단순 오타뿐 아니라 문장의 수준, 문단의 흐름, 구조의 완결성 등 걸리는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잠시 쉼과 충전이 필요할 때다.
글이란, 날것의 삶이 진솔하게 담기는 순간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늦게 되돌아온 학생의 본분에 더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모른다.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위선일 수 있다. 강의를 처음 듣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자신을 온전히 삶에 담그고 나서야, 더 솔직하고 가치 있는 글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인생이란 한 편의 글을 위해 단락의 마침표를 찍을 시점이다.공부해야지. 영차.
아예 펜을 꺾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정말 행복했다. 글쓰기가 큰 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기쁨을 맛본 사람으로서 글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다. 학생으로서는 늦은 나이에 가정과 아내가 있으니, 잠시 동안 내려놓고자 한다. 글쓰기도 가지치기의 대상이라니 심히 유감스럽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단순 라이프 앤 피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많은 유희를 포기한다는 것과 동의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삶은 즐겁다. 주변의 모호한 관심사를 지우고, 흥미롭고 가치 있는 방향에 열정을 담아 몸과 마음을 던지는 행위, 그 자체가 고통임과 동시에 즐거움이다. 도전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면서, 성실하게 땀 흘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 나름 행복한 삶이다.
글을 쓰면서 참으로 기뻤다. 부디 독자들에게도 내가 느낀 기쁨이 전해졌길 바라며,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가 즐거우니 기왕이면 여러분들도 즐겁게 살기 바란다. 나 혼자만 즐거우면 외로우니까.”
그럼, 파이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학기가 마무리되는 12월 말, 다시남편 주부가 되어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못했던 이야기를 할 그날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그동안 삶으로서 글을 구상하고 있겠습니다.
라면은 잠시 끊으시는 걸로.
** 단순한 삶을 즐기는 성격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 같다.
어머니께서는 미니멀 라이프의 대가이시기에 내 방은
절대 건드리시지 않는다. 일주일에한 번 스스로 청소한다.
부모님께 더부살이하는 아들로서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 하루 일과 : 6시 기상, 6시 30분 따릉이(서울시 공유 자전거) 타고 등교,
10시 30분 하교, 11:30 집 도착. 12시 취침.
방에는 거의 잘 때만! (구차하지만 변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슬쩍~~~)
**** 이 글의 초안을 완성하고, 불현듯 떠올라 오랜만에 김동률의 ‘Melody’ 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울컥했네요. 김동률에게 노래가 삶의 위안이 되었던 것처럼,
제게는 글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친구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 주었으며, 고된 삶을 살아가게 해 줬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