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연홍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쯤이었다. 봄볕이 내려앉은 바다가 보석을 뿌려 놓은 듯 황홀하게 반짝거렸다. 연홍도는 남도 끝자락, 전남 고흥의 거금도에서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섬 속의 섬이다. 마을 담장 곳곳에 그려진 정 겨운 벽화와 해안 둘레길을 따라 설치된 익살스러운 조각들이 흥미롭다. 역시 예 술의 섬 연홍도, 별명처럼 ‘지붕없는 미술관’이다.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던 중, 모퉁이에서 손에 망사리를 든 할머니가 반갑게 다가왔다. 그녀는 자기를 ‘송여사’라 소개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금방 캐 온 따개비를 맛보라며 우리들 입에 한 움큼씩 넣어 주었다.
“어때, 맛있지라~~” 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람 좋은 따뜻한 웃음이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해준 점심 먹고 잡네~”
“그려? 그럼 해줘야지”
이런 인연으로 우리는 그녀가 차려 낸 맛깔나는 전라도 밥상을 맛보게 되었다.
“우와! 엄니, 요건 무슨 생선이랑가?”
“김치 너무 맛나다, 김치 좀 더 주이소! “
노지에서 뜯어온 갓에 송여사표 쌈장을 얹으니 맛궁합이 찰떡이다. 1시간만에 뚝딱 차려 낸 그 솜씨에 찬사가 넘쳤다. 우리는 누가 내 몫까지 먹을 세라 허겁지겁 먹부림을 시작했다. 바다 내음나는 해초와 생선, 울긋불긋 멋까지 부린 엄마손맛 점심이 오감만족 여행을 완성시켰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갑자기 방안에서 중년여인의 사진을 한 장 들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를 불러 세우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엄니, 이거 누구여요?”
우리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가가 빠알게 지며 말했다.
“나여~, 내가 요로콤 고왔는디 3 년만에 폭삭 이렇게 되부렀어.”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들이 가부렀어, 장가도 못 갔는데 갑자기 그만 세상을 떠나부렀당게!” 그녀의 슬픔은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을 가리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향한 초침은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예고 없는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청천벽력이다. 특히 그 죽음이 자식일 때, 창자가 끊어지고 가슴을 저며내는 슬픔, ‘참척 慘慽’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당할 때, 어떤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까? 그리움이란 참으로 힘들고 애달픈 감정이다. 어느 순간 솟구쳐올라 담담하게 유지하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버린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나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는 것을…
송여사도 손이 닿고 눈길이 멈추는 곳곳에 아들이 생각났을 테니 그 시간을 어찌 견디어 냈을까. 마음의 고통은 몸을 상하게 한다. 믿고 의지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에게도 참척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깊게 패인 주름은 아들과의 추억이 가득한 연홍도에서 아픔을 이겨낸 흔적이 아닐까? 우리는 문을 나서며 송여사를 한 번씩 꼬옥 안아드렸다.
섬을 떠나기 전, 연홍도 사람들 삶의 역사를 담은 ‘연홍사진박물관’ 벽화사진 사이에서 그녀의 아름답던 시절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우리 삶에서 희귀한 기쁨의 순간이나 슬픔의 시간, 고통으로 인한 아픔도 그렇게 견디며 흘러간다. 연홍사진박물관’ 벽화사진 사이에서 그녀의 아름답던 시절의 모습을 찾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