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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수임 May 05. 2024

부에노스아이레스 <여자의 다리> 에서 만난 탱고 커플

은퇴 여교수의 남미유목 여행기 7.

 한 쌍의 남녀가 멋지게 춤을 추고 있다. 남자는 앞을 못 보는 노인인데  여자를 능숙하 리드하며 탱고 리듬을 즐긴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감명 깊게 만난 춤, 탱고. 매력적인 춤이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본고장에서 만나고 싶었다.


12월의 불타는 금요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여자의 다리(Puente de la Mujer)>하늘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노을은 다리의 높이 솟은 주탑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강물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은색 탑은 여자의 몸매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도발적이. 


12월은 어디든지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를 풍긴다. 빨간색의 장식물들이  한 해의  마무리를 재촉하는 듯했다. 우리는 남미의 성탄절을 구경하러 숙소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멀리 보이는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의 중심에서, 탱고 음악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첫 음이 울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 주변에는 탱고를 즐 

기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리 위, 한 커플이 탱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음악에 맞추는 그  사이 몸짓의 대화가 음악을 따라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끊어지듯 이어지는 춤사위가 관능적이면서도 절제미를 느끼게 한다. 사랑의 줄다리기처럼 서로 밀고 당기고 휘감았다 풀고, 가까웠다 멀어진다. 탱고 춤은 남녀 간 사랑의 대화를 닯았다.  파트너는 서로의 느낌을 춤으로 표현하며, 그 안에는 열정, 사랑, 갈등, 고독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남녀파트너 4개의 다리가 부딪힐 듯 말듯 현란하게 교차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이도 숨이 막힌다. "4개의 다리 춤"이라는 표현은 탱고가 가진 이런 특별한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이 춤의 매력은 바로 두 사람의  다리가  함께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에너지에 있다. 마치 활처럼 휘면서 여자의 다리가 남자의 다리를 반복적으로 휘감으며 회전할 때 탱고가 "4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뱃사람과 창녀 사이의 춤이라는 유래 때문인지 그 속에는 삶의 복잡함과 열정, 그리고 때로는 슬픔까지 느껴진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춤은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둣가에 이민 노동자 계층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었던 탱고는  초기에 격렬하고, 때로는 거칠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정교하고 섬세한 예술로 진화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탱고는 그 자체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고 다리 위로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이 빛들은 다리의 우아한 곡선을 강조하며, 춤추는 커플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분위기에 이끌려 나는 다리 위까지 걸어왔다. 어느덧  탱고 커플은 마지막 스텝으로 춤을 끝내고 있었다. 주변의 구경꾼들은 환호 속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인사를 하는 탱고 커플에게 박수를 보냈다.


탱고커플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이 도시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탱고는 단순한 춤이 아닌,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흡이 만들어내는 예술이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순간에 신뢰와 리듬이 필요하듯이...

탱고의 열정과 <여자의 다리>의 우아한 건축미가 함께 만들어낸 이 풍경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진정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 <여자의 다리> 위에서 춤추는 탱고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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