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문학 1호점(강원도 영월 편)
강원도 여행에서 영월을 다녀온 건 생애 손꼽을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찾아간 서점도 좋았지만, 그날의 기분과 날씨, 숲의 분위기, 무엇보다도 낯선 장소에서 발견한 책에 대한 만족감까지 여러 요소가 합을 이루어 여행의 종합적인 기억을 만들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영월의 인디문학 1호점이다.
이슬비가 내렸다.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굽이굽이 들어갔다. 여기가 맞아?라고 두세 번쯤 옹알거렸을 때 오른쪽으로 서점이 보였다. 주변의 색감이 따뜻하다. 숨을 들이마시면 초록초록한 산공기가 느껴졌다. 깊은 숲 속 오두막집을 발견한 느낌이 이런 거려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양이 두 마리가 바닥을 나른하게 뒹굴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고양이가 있어 푸근한 분위기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면 다 구경할 수 있는 아담한 규모였다. 공간마다 책이 빼곡했다.
사방 구석구석을 훑었다. 찾는 책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어느 책을 만나게 될지 기대할 수 있는 순간. 같은 책도 대형 서점에서 발견하는 것과, 살면서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어느 낯선 장소의 서점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 느낌이 다르다. 지상과 하늘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이 다른 것과 같달까.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어렸고, 창 앞에는 시집이 놓여 있다. 내게 필요한 정경이었던 것 같다. 꼭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사실 그때 난 다른 세상에 있어야만 했다.
회사 생활이 위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태를 넘어 위기였다고 생각한다.
돈 없는 시절에는 책을 원 없이 사읽기 위해 직업을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삶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일에 몰입한 나머지 정시 퇴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와 나는 그렇게 멀어졌다.
스스로 이도 저도 아닌 흐릿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쪽으로도 특출 나지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자의 한숨이랄까.
책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 양조위의 얼굴이 보였다. 이야.. 이게 내가 찾던 책이다.
키노 씨네필 단행본. 이 서점을 더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는 건 책을 발견했을 때 느낀 쾌감도 분명 한몫하리라.
정신건강에 좋은 책구경을 마음껏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빗방울이 멎어 있었다. 산공기가 참 맑았다. 강원도를 좋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산내음과 비내음이 섞인 공기 덕분에 숨만 쉬어도 머릿속에 초록색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내가 자연에 와 있다는 실감을 준다.
그런 이유로 나에겐 영월, 하면 이곳에서의 신비로운 기억이 자주 떠오른다.
그때의 온도와 공기, 절대 못 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