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과 끝

인덱스숍(서울 편)

by 이마루

오랜만에 건대입구로 나갈 일이 생겼다. 친구와 약속을 잡는데 여러 후보지 중에서도 건대입구가 떠오른 건 순전히 가보고 싶던 서점 한 곳 때문이었다. 바로 광진구 커먼그라운드 건물에 있는 서점, 인덱스숍이다.

퇴근 후 인근 동네책방을 한 군데씩 방문해 보겠다는 나름 알찬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실행하지 못한 까닭은 가보려고 체크한 서점들이 7시면 폐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이 6시인데 폐점 시간이 그러면 서점 도착만 해도 7시일 텐데.

한동안 대형서점만 드나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우연히 알게 된 서점이 인덱스숍이었다. 대형서점과 비슷한 시간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여길 가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퇴근 후 시간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주말이 되어서야 그 기회가 생겼다.

대학가에만 오면 마음이 붕 뜬다. 대학생들에게서 좋았던 나의 한 시절이 투영되어 보이나 보다. 딱히 20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나도 알았더라면 뭐가 얼마나 달라지긴 했으려나.


주말인데 커먼그라운드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휑한 1, 2층을 지나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한쪽 구석 오른쪽으로 금빛이 비쳤다. 온통 파란 세상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은 듯한 따뜻한 색감의 공간으로 장면 전환이 이루어졌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커피와 책의 진한 향기가 코끝에 내려앉았다. 고요하다. 책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문학과 비문학, 잡지 등 분야별 섹션이 나뉘어 있다. 서점의 이름처럼 음악, 예술, 영화와 같이 곳곳에 인덱스가 붙어 있다. 이날 시간을 가장 길게 보낸 곳은 영화 섹션이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이 한 군데에 모여있어서 찾기가 편했다. 다른 공간보다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둘러봤다. 제목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했다. 이 책이다, 싶은 게 나올 때까지.

특정 책 위에 메모가 붙어 있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 정성스럽고 친절하다. 지역서점을 다니다 보면 이런 개성 하나하나를 파악하는 게 꽤 즐거운 일이 된다. 어떤 책방은 작가가 직접 쓴 소개글이 붙어 있어 그 책이 나를 위한 작가의 특별한 선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는 책방의 주인 혹은 직원분이 쓴(정확하지 않다) 책의 소개글, 추천글이 붙어 있었다.

글을 쓰며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있는데, 이 서점에서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방 책장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김소미 작가의 <불이 켜지기 전에>다. 그때는 이 책과의 인연이 없어 사진으로만 남겨두고 말았지만 이후 부산 여행 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곽아람 작가가 공부의 위로라는 책에서 그랬다. 책에도 ‘인연책’이라는 게 있다고. 역시, 만날 인연이라면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

서점 위층 공간은 카페였다. 아래층에서 구매한 책을 들고 위층에서 독서하며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이날 나와 만난 책은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거장,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집이다. 지금은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와 절판된 구판본이다. 절판된 책을 발견하면 희열을 느낀다. 책표지, 종이의 질, 글씨체와 같은 요소도 유행을 타는데 이렇게 시간을 체감하게 되는 과거의 책 표지를 발견하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어린 시절 거실 서재에 꽂힌 엄마의 오래된 책을 들춰보곤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을 펼쳐보니 겉은 새 책인데 종이의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이마저도 좋은 걸.

문득 책 한 권 한 권이 '세계'라면 서점은 공항과도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곳에서 나는 어디로 떠날지만 결정하면 된다. 한 세계의 여행을 마친 나는 어느 장소에 이르게 될까. 경험상 여행의 끝은 시작과는 언제나 다른 지점이었는데.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