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위로가 될 때

공부의 위로(곽아람) 독서 후기

by 이마루
생각하는 만큼 인간은 발전한다고 믿는다.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다른 부위를 흔들어 깨워 억지로라도 열심히 쓰다 보면, 우수함을 타고난 이들 만큼은 못해도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어느 정도 문리가 트이게 된다. 뇌도 근육이라 잠들어 있던 부분을 인식하고 단련하면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뉴욕수업을 의미 있게 읽어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았다.

배우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사람이라면, 공부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년 6개월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하며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학, 행정법 5과목을 공부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았다. 물론 배울 때의 고통은 잊을 수가 없다. 다만 행위 자체에서 스며 나오는 위로가 있었다. 특히 행정법을 배울 때는 이과로 살아온 내가, 모르고 살아온 다른 분야를 알아간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흡족했던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걸 언제 배울 수 있겠어, 라는 마음이었달까. 게다가 한국사는 인생을 위한 쓸모 있는 공부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 암기한 많은 부분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 찾을 수가 없다. 풍화를 거쳐 일부가 크게 부서져 내린 바위 같다. 하지만 배움의 원형이랄까. 그것은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배움의) 싹은 물 준 것을 결코 잊지 않고 무럭무럭 자란다'고 한다. 그때 열심히 심어놓은 싹이 내게도 있으니 물만 주면 그것은 언제든 자라나리라.


이 책은 작가가 대학생 때 들었던 교양과목을 위주로 그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쓴 교양에 대한 책이다.

우선 대학생 때 교양으로 그토록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는 데에 1차로 놀라고, 당시 배운 내용과 수업 관련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여 기억하고 있다는 데에 2차로 놀랐다. 이것이 진정한 기록의 힘이다. 작가는 서양과 동양 미술사는 물론 인도, 일본 미술사, 불어산문, 고고학, 중국어, 영미단편, 법학, 인도미술사, 종교학, 심리학, 라틴어, 한국 도자사 등 아니, 이런 것까지 배웠단 말이야? 싶은 과목을 교양수업으로 들었다. 그저 듣기만 한 게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생각을 하면서 배웠다는 것은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생각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납득하게 된다. 아, 이래서 교양을 쌓아야 하는구나. 하고.


교양이란 완벽한 지식 체계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하되 다른 세계가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양이란 겹의 언어이자 층위가 많은 말,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일, 세 치 혀 아래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넣어두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10p


독서하면서 나의 기억은 자주 대학생 때로 돌아갔다. 나는 초중고등학생 때는 해리포터를 읽은 기억밖에 없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부터는 폭발적으로 책을 읽었다.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져서 주전공은 물론 복수전공, 부전공까지 하려고 했으니 능력에 비해 과욕도 부렸다.

교양으로 들어보자 했던 심리학개론에 감명을 받아 심리학을 복수전공까지 하게 됐다. 이과인 내가 사실은 문과를 택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자각해 뼈저린 후회와 함께 진로에 대한 뒤늦은 고민도 참 많았다. 서양미술사, 동양복식사, 일본문화, 무역학, 심리학, 신문방송학 등 다양하게 들어보려고 노력한 기억이 난다. 늘 배움에 갈증이 있었다. 도서관에 수시로 들러 새로운 책이 없는지 살폈고, 가급적 관련 교양서적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심리학에 대한 서적을 많이 읽어둔 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 두고두고 쓸모 있는 심리학이다.


최근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에 대한 챕터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인연 책'이라고 했다. 사실 서양미술사 책이 10대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도입부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끼던 나는 살짝 주눅이 들어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그림을 보고 느낀 바와 책에서 옮겨 놓은 구절을 읽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하고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서양미술사 입문 수업 파트에서는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암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위안까지 받았다.


서양미술사 입문 수업을 듣던 대학 2학년의 나는 작품의 맥락이며 역사적 의미 같은 걸 깊이 이해할 새도 없이 굶주린 새끼 짐승이 어미젖을 빨듯 무조건 외워버렸다. 그때의 나는 ‘이런 암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냉소했지만, 나이가 드니 삶의 어느 순간 옛 생각이 나면서 ‘그때 그 작품이 이런 의미였겠구나’ 하고 이해되는 경험과 깨달음의 기쁨이 종종 찾아온다. 누군가는 ‘암기’를 ‘절반의 앎’이라며 비웃지만, 그 절반의 앎이 시작되지 않으면 완전한 앎이란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131p

이 책에서 말하길, 책에는 ‘인생책’도 있지만 ‘인연책’ 또한 있다고 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내게는 이 책이 ‘인연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 대한 부분과 금각사를 다룬 부분, 그리고 파우스트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부와 배움에 대하여 나의 이야기를 추억하며, 교양을 쌓고 싶은 마음이 함께 커졌다.

이 책은 가능한 한 많은 걸 배우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기억하게 했다.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마찬가지.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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