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깨어날 양심을 위하여

28(정유정)을 읽고

by 이마루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좋아한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일상을 대비하는 피곤한 나의 성향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도 투영이 되는 건지, 아무튼 이 장르는 보았다 하면 놓치지 않고 읽고 본다. 디스토피아가 설정이 썩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어서 읽으면서도 기분이 찝찝하고 착잡하고 화가 나고 짜증 나고 더럽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게 되는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돌변하는 인간, 그 진실한 얼굴과 꾸미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인간을 마주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다.라고 인간 이해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 그런 마음? 뭐, 현실은 구시렁거리는 혼잣말과 감출 수 없는 불평으로 화도 겨우 가라앉히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정유정 작가님의 28을 읽었다. 읽는 동안은 내 머릿속에는 눅진한 피 비린내와 축축한 하수구 악취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각 인물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치밀하다. ‘독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모두가 지옥불을 향해 달려드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구한다. 그렇게 본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구원 서사를 써 내려가기도 한다. 이 이야기가 결코 얼토당토않은 비현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만약 소설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도 벌어진다면, 누군가는 타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불구덩이에서 타인을 끌어낼 것이다.


이야기는 화양시라는 인구 29만 명의 가상 도시에서 벌어진다. 어느 날 빨간 눈 전염병이 발병한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도시가 봉쇄되고 전염병은 더욱 빠르게 돈다. 사람들은 혼돈에 빠져 이성을 잃는다. 도시는 무법지대가 되고 시스템은 붕괴된다.


파고들면 심연이 들여다 보이는 작품이랄까. 이야기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서사로 전개되는데,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와 성향을 파악하며 읽어나갈 수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사람이 할 법한 행동, 또는 특정 행동을 하는 이유 등을 짐작하면서 읽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어떤 인물 A의 시점에서 사건이 묘사된 후에 그곳에 있던 또 다른 인물 B의 시점으로 동일한 사건을 다시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읽는 데 피로함을 느끼기도 했다. 간신히 읽어낼 만큼 힘든 상황의 묘사에서 특히 그랬다. 다 알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왜, 상상의 여백이 더 무시무시할 때도 있지 않은가.


인간과 전염병을 주고받는(?) 상대는 ‘개, 강아지’였다. 아마 그래서 더 충격적인 이미지로 상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작가님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효과를 더 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돼지 생매장 동영상을 접하던 밤’에 시작됐다고 했다.


눈보라 치는 밤, 깊은 구덩이 안에서 죽음을 직감한 돼지 수백 마리가 두려움으로 날뛰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산 채로 묻힌 그들의 울음소리는 이튿날 아침까지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고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웠다. 돼지들의 비명과 울부짖음이 오래오래 귓가를 맴돌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전에 어딘가에서 본 표현을 빌리자면, 28은 내게 ‘상흔을 남기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긴 시간 들여 읽었는데 기억에서 금세 휘발되는 것보다는, 마음에 무언가 표식을 남기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눈 질끈 감고 이제 다 알겠으니 이 부분만 넘어갈까, 유혹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읽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기로 각오하고 읽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어디까지나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눈뜨고 깨어날 나의 양심’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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