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시대에도 인간성을

수확자 시리즈(닐 셔스터먼)를 읽고

by 이마루

수확자 시리즈로 알려진 총 3권의 이야기(수확자, 선더헤드, 종소리)를 완독 했다.

세계관이 방대한 만큼 책이 두꺼워서 읽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이런 건 사실 끊어 읽지 않고 바짝 몰입해서 읽어야 제맛인 건데.


회사 선배한테 추천을 받았다. SF에 한참 빠져있다고 했더니 이 소설을 추천해 주더라. 정말 재미있다고.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읽을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두꺼운 책이었다. 게다가 3권인데 갈수록 분량도 두꺼워진다. 처음에는 밀리의 서재에 담아둔 채로 짬이 생길 때마다 도입부만 슬쩍 읽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50쪽, 100쪽도 이 장대한 세계관에서는 그저 극초반에 해당한다.


그러다 마침내 독서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 난 이 시간을 오로지 독서에만, 아니 이 세상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의 탐구와 탐독에 쏟아 붓기로 했다. 들인 시간을 생각해 보면.. 수확자는 2주 정도, 선더헤드는 1주일, 시리즈의 마지막인 종소리에는 약 2주가 걸렸다. 총 5주에 걸쳐 완독 한 셈이다. 병렬독서를 하는지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죽음이 더는 죽음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어느 미래 시대의 이야기다. 인간은 회춘의 기술을 얻어 사실상 영생을 누리게 됐다. 이런 그들에게 인위적인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수확자’가 탄생한다. 수확자 패러데이는 시트라와 로언을 자신의 수습생으로 선택한다. 두 사람 중 단 한 명만이 수확자가 될 수 있다. 한편, 수확자 조직인 수확령에도 죽음 자체와 권력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보수파와 신질서파로 파가 갈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알력다툼이 일어난다. 이토록 깊어지는 세상의 균열, 바로잡힐 수 있을까.


수확자의 세계에서조차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에 따라 파가 갈리고 온갖 정치가 난무한다. 배경만 미래일 뿐이지 벌어지는 일은 현재와 다르지 않다. 어떤 시대이든 인간이 모이면 정치싸움은 필연적인가 보다.

머릿속에 세계관이 잘 그려지는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화도 추진 중인 모양이다. 소설에는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한 여러 가지의 요소가 맛깔나게 섞여있다. 사랑도 있고, 액션도 있고, 죽음도 있다. 특정 장면, 예컨대 대규모 액션신의 경우에는 영상화를 상상하면서 읽었다. 이 시리즈는 머릿속에 영화를 틀어놓은 듯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경험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로언의 서사가 참 안타까웠다. 그가 경험하는 고통 하나하나가 받아들이기 버거울 정도였다. 시트라의 곁에는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누구라도 있었다. 그런데 로언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는 만사가 가혹했다. 로언에게도 삶의 의미는 있었지만 그 대가가 잔혹했다. 마지막 결말 부분조차 그의 인내심에 나는 그저 박수만 보낸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시트라와 로언의 세상을 구하는 액션이 두드러질수록 어둠 또한 짙어지는데, 그런 악의 무리에 맞서는 각 주조연 등장인물들의 활약도 볼만하다. 2권 선더헤드부터 새로운 인물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는데, 사실 세계관이 워낙 큰 나머지 등장인물도 메모하면서 읽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이 모두의 역할을 어떻게 이야기에서 풀어내고 매듭지어 수습할지 갈수록 (우려도 되면서) 궁금했는데 기우였다. 차곡차곡 빌드업되어 눈부시게 결말을 꽃피운다.


결말이 마음에 들어 추천한다. 이야기는 비록 길고, 중간에는 늘어진다 싶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 결말이라는 소실점을 향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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