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수업(곽아람) 독서 후기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다.
미국에서 1년 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20대 초반의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 확인한 그때의 넓은 세상은 지금의 취향과 관심사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마치 백지로 떠나 그림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든 생각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나서 큰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멋진 일이었겠다는 것이다. 아직 멀었구나 라는 모종의 깨달음이 있었다. 뭐, 그냥 생각 반 아쉬움 반이다.
막연한 꿈이 생겼다. 어떻게 보면 바람이 들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해야 할 모든 도리와 의무, 그리고 책임을 다한 다음 은퇴 이후라도 좋으니 나 역시 떠나보고 싶다. 다른 세상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교육’해보자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책의 저자는 작년 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출판사 마음산책 부스에서 <쓰는 직업>이라는 책을 구입하면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나의 뉴욕수업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이것부터 먼저 읽었다. 회사 생활 14년을 다니고 1년의 해외연수 기회가 주어진 저자는 떠날 도시로 뉴욕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 도시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글에서 호퍼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고독하지, 쓸쓸하진 않았다.
독서할 때는 언제나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들었다. 책에 묻은 음악의 선율은 작가의 경험과 나의 기억을 은은하게 엮어줬다. 저자가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 때, 난 나의 미래를 기억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에 임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느 대목에서 60대에 접어든 내 모습을 그렸다.
요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린 인생의 선택을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삶을 더 그리워하며 감정을 낭비하는 꼴이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더 자유로울 내 모습을 끊임없이 그리워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에 열정을 보이는 그들 덕분에 작은 위로를 받았다. 배움은 언제든 가능하다. 늦은 나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모든 문학 활동의 시작과 끝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내 안의 세계를 통해 재현하는 것, 즉 모든 것을 파악하고, 연관시키고, 재창조하고, 조형화하고, 개인적인 형태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쓴 이 문장을 호퍼는 성인이 된 이후로 계속 지갑 속에 넣어 다녔다.
12p
얼마 전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라는 책을 완독 했다.
예술이 한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 또한 (결은 살짝 다르지만) 예술을 통해서 외부 세계와 내면으로 파고든다는 점에서는 부제(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와 같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인생, 그림과 무관하지 않은 곳이다. 저자는 이곳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내면으로 받아들인 세계를 글로써 재현했다. 그러니 저자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도 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의 환상과 현실도 담겨있다. 품고 있던 환상이 바사삭 깨지는 순간마저 가감 없이 적어 나간다. 글이 더 담백하게 읽힌 이유다.
도시의 불친절, 편견, 차별과 관련된 부분을 읽고 있으면 내가 경험한 불쾌한 기억도 함께 떠올라 공감했다.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다. 뉴욕이라서 가능한 멋진 장면들도 있었다. 한편 이민자의 도시로서 차별과 편견이 그림자라면, 빛은 포용이 아닐까. 누가 무슨 일을 해도 “여긴 뉴욕이니까” 라는 말로 퉁쳐지는 분방한 도시의 느낌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한 번쯤은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만 더 커지고 말았다.
작가님의 글이 좋아 다음 책은 <쓰는 직업>을 펼쳤다. 신문기자로 20년을 보냈다고 하니 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의 글은 또 내게 어떤 영감을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