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광고 카피도감(오하림) 독서 후기
내 인생은 나 이외의 인생으로 만들어진다
이와나미 서점.출판사
두 번 읽었다. 어떤 문구는 이게 문학이지, 싶을 만큼 좋았다. 여러 번을 읽어서라도 그 한 줄은 마음에 간직하고 싶었다. 때로는 그 광고 문구에 대한 작가의 해설과 덧붙인 말들이 감동을 주기도 해서 멈추고 곱씹었다. 독후감의 제목인 ‘이 한 줄을 만나러 왔어’는 제78회 독서 주간 홍보 포스터의 광고 카피로 소개된 글귀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제목과 일치한다. 보고 싶고 듣고 싶었던,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 이 책 안에는 여러 줄 있었다.
그동안 스치듯 보고 무의식으로 넘겨온 수많은 광고 카피들은, 실은 누군가의 시선을 격렬하게 사로잡아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고도의 노력이 깃든 글이었을 테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광고를 의식해서 본 기억조차 없었다. 나를 사로잡는 광고가 그만큼 없었다고 보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카피라이터였던 작가는 카피를 쓸 때 “제품의 특성이 아니라 제품을 통해 바뀔 세상을 묘사하라”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안목은 탁월했다. 책에 엄선된 이 카피들은 브랜드의 제품 그 자체에 대한 홍보보다도, 내세우는 가치와 함께 하는 ‘나‘ 그리고 ’내 삶‘을 그려보게 했다. 감성 가득한 시적인 문구는 겪어본 적 없는 익숙한 경험과 가본 적 없는 그리운 장소에 대하여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신기한 경험이다.
처음 혼자 했던 여행을,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
청춘18티켓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
JR큐슈.철도
2018년에 혼자 간사이 기차 여행을 떠났다. 광고를 만든 JR 큐슈를 직접 이용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본 기차 여행을 떠났다는 점에서는 어떤 내적 공감대가 형성된 건지 이 광고를 보고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저릴 정도로 그때의 내가 그리워져서다. 오랜 연애가 끝이 나고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막막한 심정으로 여행을 다녔었다. 한 곳에만 머물면 오래 지나지 않아 구멍 난 마음에서 주룩주룩 눈물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텅 빈 마음을 새로운 풍경과 사람으로 채우고 싶어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했다. JR 큐슈의 광고 문구를 읽고 2018년 한여름을 떠올린 건, 이 글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내게는 그때의 텅 빈 마음과 그것이 다시 채워지기를 바랐던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직업을 꿈꾸며 인생의 목표를 새로 쓴 여행이기도 했다. 기억도 아련하다. 한편으로는 미래의 언젠가 다시 떠나게 될 기차 여행을 생각하게도 한다. 그 여행의 마음은 8년 전과는 다른 것이었으면 한다.
마음에 담아둔 모든 글귀를 소개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책 한 권 대부분을 여기에 쓰게 될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나에게 좋은 책을 만나면, 몸에 꼭 알맞은 영양제를 먹어 힘이 나는 것처럼 기운이 돋는다. 독서라는 게 시간을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피곤한 것이 되어 버리곤 하지만, 기껏 읽어서 남는 게 없다면 어딘지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런데 어쩌다 잘 맞는 책과 이야기, 글귀를 만나면 손해 본 듯 억울한 지난 몇몇 시간이 보상을 받은 듯 충족되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