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원의 형태를 그리는 추억

영광도서에서(부산 편)

by 이마루

오늘 다녀온 영광도서는 1968년에 설립된 부산의 오래된 서점이다. 서점과 책방을 수집(?)하는 한 사람으로 이렇게나 오랜 세월 운영되고 있는 서점을 보면 감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설립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한 방향으로 흘러 왔을 책에 대한 어떤 마음이랄까, 태도, 이런 요소를 생각하면 서점에 머무는 그 시간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영업시간 10:00~21:00

부산의 겨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평온하다. 나른한 햇살이 무대를 향한 조명처럼 서점 안을 비춘다. 서점의 1층은 층고가 높다. 들어서면 책이 깔린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통유리창으로 따뜻한 기운이 흘러 들어온다. 전에도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지역서점을 다니다 보면 그 장소만의 개성을 파악하는 것이 나름 즐거운 일이 된다. 일반 대형 서점과는 다른 독특한 큐레이션을 보는 것도 좋다. 서점 주인이 추천하는 책을 보면서 존재를 몰랐던 책을 알아가는 것도 큰 기쁨이 된다.

오랜 시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지역 서점의 특징일까. 서점 안팎으로 어르신이 유독 많이 보인다. 한쪽 구석에서 책을 펼쳐 서서 읽고 계신 분부터 잡지를 둘러보는 분까지, 이곳이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서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떠올려 보면 어릴 때 자주 다닌 동네 서점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엄마에게 용돈 5천 원을 받아 들고 5분 거리의 서점으로 달려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책을 산 기억도 선명하다. 어느 날은 짱구는 못 말려 만화책을 사기도 했고, 또 다른 날에는 논리야 놀자 책도 샀더랬다. 필요할 때면 언제나 달려가 책을 구할 수 있던 그 서점은 내가 중학교에 진학한 시점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상점이 들어섰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은 10대의 끝무렵부터 다녔다. 비록 동네서점은 아니지만 내게 먼 훗날 책에 대한 일반적인 추억을 줄 수 있는 서점은 아마 그런 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강렬함은 동네 서점이 조금 더 크다.

영광도서의 서적은 지하 2층부터 1층까지 있다. 2층에는 문구점이 있다. 1층에서 이곳만의 문학 큐레이션을 구경하고,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1층도 역시 사방이 책이다. 책의 창고와 같은 느낌이 있다. 간혹 운이 좋으면 절판된 책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서점으로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직원의 통화 소리로 짐작건대, 재고를 문의하는 전화 같다. 지하 2층에서는 만화책을 구경했다. 만화 파트가 꽤 크다. 문학 구역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장송의 프리렌 화집을 골랐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왔다. 찾는 책이 있었다. 이전에 방문한 영화의전당 라이브러리에서 봐둔 김소미 작가의 <불이 켜지기 전에>라는 책이다. 영광도서 홈페이지에서 미리 찾아보고 재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 1층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책의 위치를 문의했다. 곧장 책장으로 향하더니 사다리를 이용해 저 높은 곳의 책을 꺼내 주신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골라온 책 두 권을 계산했다.

오늘 고른 두 권의 책은 다른 서점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던 책이다. 그렇지만 지역 서점에서 사는 책은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책처럼.

2층 영광문구

책을 사기로 마음을 잡고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책을 발견하여 구매하기에 이르기까지가 닫힌 원의 형태를 그리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 기억이 여행의 한 시퀀스로 묶이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그 장소에서 사 온 책들을 한 권씩 서가에 꽂아 본다. 그러면서 부산 책방 여행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읽을 책은 무한하다. 한정된 시간을 움켜쥔 한 인간으로 때로는 읽고 싶은 책과 그 욕심 앞에서 끝도 없이 작아진다. (우주를 생각할 때의 인간의 무력감이 이와 유사할까?) 그렇지만, 활자중독자로서.. 아쉬워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읽자는 것이 언제나 이 생각의 끝에 있는 결말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의 독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