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열무 비빔밥

: 비오는 날이 그리운 감정에 사무치는 이유

by 서녕

1997년 6월 여름,

고요한 병원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처음 세상에 마주한 난 엄마라는 존재 앞에서 힘껏 울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하는 공기를 마셨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정성을 먹고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성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6살 배기 아기는 결국 외할머니의 손에 맡겨지게 되며 시골의 밥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밥상은 투박하고 못생긴 냄새가 많이 나는 밥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 고들빼기 반찬. 뭔지 모르고 먹었던 그 반찬은 씁쓸한 맛이었고 매콤한 맛이었다. 다소 어린 나에겐 충격적인 맛이었지만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금세 혀가 즐기기 시작한 반찬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맛있는 고들빼기 반찬에도 손으로 찢어 먹던 조기구이에도 공허함이 찾아왔다.


어린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마당에 나가서 뽀얀 얼굴에 비가 내리는 건지 눈물이 쏟아지는 것인지 구분도 되지 않은 채 목 매어 울었고 목구멍으로 꺽꺽 되던 숨을 참으며 엄마를 연신 불러냈다. 외할머니는 그런 나를 나무라셨고 따뜻한 고봉밥이 담긴 밥상에 앉혀 다그치곤 하셨는데 그 순간에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고들빼기 반찬도 조기 구이도 먹을 수 없었다. 아니, 먹고 싶지 않았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라는 단어가 배고픔을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외할머니와 지낸 지 한 달이 흘렀을까?

대문 밖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보고 싶었던 엄마다. 나는 비가 와서 축축한 모래 바닥에 있는 뾰족한 돌멩이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의 품은 마음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었고 함박웃음을 짓게 하였다.


한참을 안기며 엄마를 부르는데 비닐봉지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금방 나는 똘망한 눈을 뜨며 물었다.


"이거, 뭐예요??"

"이건 열무김치야~ 엄마가 만든 건데 잘 익었더라~"

"열무김치..?"


엄마는 얼른 들어가자며 나의 손을 잡았고 비닐봉지 속에서 들리는 꿀렁거리는 소리에 물음표를 그려갔다. 그리고 엄마는 빠르게 밥상에서 열무김치라는 것을 올리며 맛있다며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엄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아이에게 손으로 집은 초록색의 줄기를 넣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어때? 맛있어?"


아삭아삭한 식감, 씹으면 씹을수록 질겨지는 이 맛은 처음으로 맛본 신기한 맛이었다. 갑자기 저 멀리 모락모락 김이 나는 보리밥을 세숫대야 크기만 한 그릇에 담아오시는 외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계속해서 물음표를 그리고 있던 나는 엄마에게 또 물었다.


"할머니는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열무 비빔밥 먹을 거야~ 달걀 프라이도 구울까??"


아무것도 감이 잡히지 않던 그 아이에게 할머니는 인삼 모양이 그려져 있는 숟가락을 쥐어 주셨고 마침 저녁시간이라며 '아이고~' 한 마디에 무릎을 짚으며 일어나시고는 초록색 병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어느새 뜨거운 불 앞에서 프라이팬을 잡고 계셨다. 주방은 갑자기 분주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에는 달걀이 온몸을 떨고 있었고 김이 나는 보리밥 위에는 갈색 기름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의 청각과 후각은 곧 나의 위장에게 배고픔을 깨웠고 뭐가 뭔지 모른 채 군침만 계속해서 흘린 나는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먹어볼까~!"


엄마의 자신만만하고 힘이 넘치는 소리.

확실히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모두가 배고픔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3개의 숟가락이 이리저리 춤을 추는데 숟가락마다 부딪히는 소리가 나의 침샘을 더 건드렸고 비비면서 떨어진 밥풀은 두 손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재빨리 넣고 다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외할머니는 분홍색 파라솔로 처럼 생긴 것을 걷어내시곤 고들빼기를 내 쪽으로 밀어주셨다.


다 비벼진 빨갛고 윤기 나는 밥과 초록색 나물을 보며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곧장 넣었다.

그리고 그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씹으며 아삭 거리는 그 맛있는 소리를 귀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서툰 젓가락질로 고들빼기를 집어 다 씹지도 않은 입 속에 쑤셔 넣었고 터질 것 같은 볼과 입을 두 손으로 막은 채 천천히 씹어 삼켰다. 엄마는 맛있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가 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매운맛도 매운맛인 줄도 모른 채 숟가락 운동을 열심히 하였고 체하겠다며 주신 할머니의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서야 나의 배고픔이 사라졌다. 그 후 이 행복을 오래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엄마의 포근한 무릎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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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와 부드러운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던 그때의 기억을 머리에 심고 다시 나를 떠나 일을 하러 도시로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울음을 꾹 참던 그 아이는 약 1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비가 오는 날, 홀로 마당으로 나가 할머니에게 열무 비빔밥을 찾았다. 혹시나 올 엄마를 기다리며 말이다.


이제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슬픔과 행복이 공존하는 1년을 떠올리며 가끔씩 엄마와 함께 비가 오는 날에는 열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엄마는 항상 그때의 나를 울보라고 놀리시면서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곤 하셨는데 오히려 나는 정말 예쁜 추억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어찌 보면 엄마 덕분에 정을 배우고 청국장이라는 구수함을 먹고 열무김치라는 시원함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평생 엄마와 열무 비빔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날이 길어지길 바라며 마지막 한 숟갈 남은 열무 비빔밥을 먹어 치웠다.



-엄마, 그리고 열무 비빔밥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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