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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Jan 06. 2021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쓰고,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하고 그러면서 독자의 눈치도 봐야 하고... 머릿속이 대단히 복잡해지고 글을 쓰는 뇌가 할 일이 많아진다. 그런데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서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정신적 과정을 번거로워하거나 조금만 하려고 한다.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하는 것이지.

  게다가 지금 어른 세대는 글쓰기 교육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세대다. 일기를 써 오너라, 독후감을 써 오너라 라고 했지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잘 배우지를 못했다.(지금은 사정이 그래도 좀 나아졌다.) 그러니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니 글쓰기가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표현의 욕구가 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것을 글로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는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는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결을 알아본다. 

    

1. 무엇을 쓰지?


  자기 경험을 쓴다. 크든 작든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기 경험이 바로 스토리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경험을 말하고 또 말하고 한다. 손발을 움직여서 해본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손발을 움직인 경험보다는 지성적 경험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이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잘못된 풍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문자로 배우는 것만 경험이라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문자로부터만 배우려고 하는 마음을 경계하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이 많은 목수가 집 그림을 그릴 때는 주춧돌을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 지붕을 그립니다. 이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 짓는 순서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책, 학교, 교실에서 자기 인식을 키운 저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데 말입니다. 이런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이라는 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할 것이 아니라 차이야 말로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히 감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변화해야 한다. 내가 겪은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인생의 결과물이다. 그것을 글로 쓰면 된다.     


2. 그런데 왜 쓸 게 없지?     


 한마디로 구체로 쓰지 않아서 그렇다.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체험은 일회적이고 반복 불가능한 일이다. 일상의 체험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체험도 되풀이할 수 없다. 어제도 아침을 먹고 오늘도 아침을 먹었지만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달라졌고 아침을 먹는 ‘나’도 어제와 달라져 있는 존재다. 날마다 똑같은 날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나날이 다른 날이다. 구체로 생각하지 않으면 날마다 똑같은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다 점심 먹고 차 한잔 하고..... 그런데 그 똑같은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그날 다 다른 일이 된다. 밥을 먹었다. 한마디로 끝낼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누구랑 먹었는가 무엇을 먹었는데 그때 나온 콩나물국이 너무 뜨겁지는 않았는지, 밥을 먹으면서 나는 대화가 있다면? 말을 하지 않고 먹었다면 그 분위기는 어땠는지?

글을 대충 쓰니까 쓸 게 없는 것이다. 다음을 비교해 보자     


대충대충 쓴 글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메뉴 정하기가 힘들어서 혼났다.   

  

자세히 구체적으로 쓴 글

점심 메뉴를 정하기 위해 나는 부서원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느냐고 물었다.

“계장님, 오늘 뭐 드시겠어요?”

 “응, 아무 거나.”

 “차석님은요?”

 “응, 나도 아무 거나.”

 “삼석 님은요?”

 “응, 나도.”

 “막내야, 너는?”

 “주사님이 먹고 싶은 걸로 먹어요!” 

그래서  나는 "김치찌개로 하까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치찌개? 그 집은 지난주에 갔잖아.” 하고 실망한 듯 계장님이 말하신다.

“그럼 순댓국은요?”

“그 집은 순대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삼석 님이 받는다.

“아우 그럼 그냥 구내식당 가요.”

“구내식당? 구내식당 밥은 이상하게 금방 꺼지더라.”

나는 잠시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각자 갑시다.’ 하는 말이 목구멍에 와서 멈춘다.     

기억하라 쓸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쓸 것을 찾지 못한 것, 아니 찾지 않은 것일 뿐이다.   


  

3. 일단 쓰라      


글쓰기는 행동이다. 생각하는 것이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머리가 아닌 종이에 낱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최초의 낱말 하나에 새로운 낱말 하나를 보태고 그것으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에 또 다른 문장을 이어서 쓰는 작업이 글쓰기다. 우리가 가장 실패하는 지점이 여기다. 글을 쓰고는 싶은데 늘 머리로만 쓰고 있다. 지금 당장 자판에 손을 얹고, 혹은 연필을 들고 적기 시작해 보자 그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잘못 쓸까 봐. 망신당할까 봐 이런 주인공 의식은 버려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내가 글을 아주 잘 쓰는지 아주 형편없게 쓰는지 그들은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는가? 자기 노출의 두려움 때문이다. 모든 글쓰기는 자기 노출의 한 형태다. 자기 노출을 한 글들을 읽으면서 당신은 그들을 비난하는가?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아프고 고달픈 삶을 그대로 노출한 글을 보면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스스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도 내 글을 읽으면서 분명히 그러하다. 그들의 눈을 걱정하지 말고 일단 써라.      



4. 어떻게 쓸까?     


생각을 쓰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이 일어난 자리를 밝혀서 써야 한다. 사람의 생각을 일정 부분 비슷하다. 예를 들어 봄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은 “나비, 꽃, 봄바람, 새싹....‘ 그러니 봄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쓰면 누구나 비슷한 글을 써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그 봄에 겪은 일을 쓰면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나온다.

 그러니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야 한다. 봄에 겪었던 일, 봄에 먹어본 음식, 그 봄에 다녀온 곳, 봄에 봤던 영화, 그날 내렸던 비에 대해서 써야 한다.  감정은 절대로 직설법으로 전달하기 어렵다. ’ 기뻤다.‘ 즐거웠다.’ ‘우울했다’ 하는 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 우울했던 감정을 갖게 했던 그 일을 적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쓰려면 자세히 적어야 한다.   

  

아들, 아들

1965년 음력 6월 23일 여름, 우리 집안에 경사가 났다. 딸 다섯 끝에 엄마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머님 나이 45에도 불구하시고 대 이을 아들 염원에 출산을 하신 날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축하해 주었다.

집성촌인 우리 동네는 거의가 다 친척이었다. 어머니의 아들 없는 심적 고통을 알아서 일까, 동네 아지매들은 우리 집일을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우리 집 딸 다섯은 분주히 집안 소식을 동네에다 퍼다날랐다.

회색 빛 집안 분위기가 엄청 싫었든 터, 우리 집도 이젠 남자 동생이 탄생했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글쓰기 교실에 처음 와서 쓴 글이다. 옛날 일을 이만큼 생각해서 적은 것도 잘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가 조금 더 밝혀지면 훨씬 실감 나는 글이 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축하를 해주었는지 딸 다섯은 집안 소식을 어떻게 퍼다 날랐는지 그 모습을 좀 더 구체로 적어서 보충했다.      



아들, 아들

1965년 음력 6월 23일 여름, 우리 집안에 경사가 났다. 딸 다섯 끝에 엄마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머님 나이 45에도 불구하시고 대 이을 아들 염원에 출산을 하신 날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축하해 주었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월오댁이 아들을 낳았네. 그래.”

“잘됐네. 잘됐어”

“아이구, 구기할매소원 풀었구먼” 

“아유 잘됐네요.” 

집성촌인 우리 동네는 거의가 다 친척이었다. 어머니의 아들 없는 심적 고통을 알아서 일까, 동네 아지매들은 우리 집일을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우리 집 딸 다섯은 분주히 집안 소식을 동네에다 퍼다 날랐다.

“내 동생 고추 달고 나왔데요, 상동댁아줌니” 

“할매요, 우리 동생 아들이래요.”

“울 엄마, 아들 낳았어요. 아들!”

“얘야, 네 동생 고추 달린 거 봤어”

한 곳에 서 있는 나에게, 이웃 아지매가 물었다. 

“아뇨 못 봤어요, 안방에 들어오지 말랬어요.” 

“왜?” 그러자 다른 아지매가 

“왜긴? 바깥에서 부정 탈까 봐 그러는 게지”하고 설명해주었다. 

회색 빛 집안 분위기가 엄청 싫었든 터, 우리 집도 이젠 남자 동생이 탄생했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은 본 대로 들을 대로 느낀 대로 한 대로 쓴다는 것을 말한다. 축해해 주었다는 추상이 아니라 어떻게 축해 주었는지를 구체로 떠올려서 써야 실감 나는 글이 된다.     



5. 글과 감동     


  글쓰기는 개인의 일을 적는 사적인 활동이지만 낙서나 메모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 나눌 만한 의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글을 쓸 때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체험에 대한 해석과 반성 그리고 통찰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기 체험을 적은 생활글이 그저 감정의 표출이나 변명 혹은 수다 떨기와 달라지는 점이다. 글에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 수도 있고 가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의미롭고 가치있는 일에 감동을 한다. 그런 일을 적은 글에 감동을 하게 된다. 감동을 주는 글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 삶은 글을 낳고 글을 삶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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