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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Jan 22. 2024

<음악 글쓰기>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변주곡

익숙한 것은 더 아름답다


얼마 전 한 클래식 음악 방송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시청자가 신청곡을 부탁하면서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면서 ‘지히진진 지히진진 지히 진 진 진’ 하는 거라고 적어 보내왔다. 담당 아나운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읽었다. 그러자 그것을 듣고 있던 청취자들이 비발디의 사계 중 3악장 가을이라고 문자를 보냈고 그것을 들은 사연자는 그것이 맞다고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음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쾌한 일이었다. 또한 익숙하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변주곡은 낯선 듯 익숙한 곡이었다. 어디서 들은 적은 있는데 하면서 다람쥐가 뛰노는 듯한 1악장을 듣는다. 잠시 우울한 마음이 가시는 것 같다. 피아노 위에 물결이 일어나면서 다람쥐는 잠시 사라지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에 ‘또로로로’소리를 내면서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다람쥐가 사라지고 음악은 천천히 우리를 조봇한 산책길로 안내한다. 피아니스트는 우리의 걸음을 세어 주는 듯이 또박또박 걷다가 이제는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안내하는 선율을 따라서      

7분쯤에 가서는 아주 먼 곳에서 카덴차처럼 들려온다. 피아노의 물결은 마치 가을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듯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린다. 루간스키라서 다르게 연주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귀가 미천해서 음악가나 지휘자의 특색이 곡에서 살아나는 것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와, 좋다. 어쩜 저렇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나?” 하면서 좋아할 뿐이지. 그게 아쉽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귀가 너무 예민한 사람의 어려움을 들어서 알고 있다. 드럼을 치는 사람은 음악에서 드럼소리만 들려서 힘들다고 하고 피아노 치는 사람은 자기 소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느라 곡에 몰입이 어려워 힘들다고 하는 것을 들은 바 있어 그저 내 귀에 만족하기로 했다.     

 #16번 곡 중간쯤에 ‘처음에 나왔던 주제가 단조로 변주되어 흐르는가?’하면서 듣고 있는데 차츰 소리가 더 적어지다가 ‘딴 따다다단 딴 딴따다 단’하는 익숙한 곡조가 흘렀다. 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부분이 여기였구나. #18번 안단테 칸타빌레! 익숙한 부분이 나오니 내가 그 연주자와 더 친해진 것 같았다. 루간스키는 그 주제 선율을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들려주었고 나중에는 마중 나온 오케스트라와 만나면서 장엄한 세상을 열어 주었다. 마치 나는 내가 원하는 세상 안에 들어가서 마음껏 흡족함을 누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음악은 다시 나를 다람쥐와 함께 뒷산을 뛰노는 곳으로 안내한다. 조금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리기도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딴따라라랏따’ 하는 선율이 귓가에 맴도는 하루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자꾸 해보는 데서 생긴다. 음악도 자꾸 들어 봐야 하고 미술작품은 자꾸 보아야 한다. 이렇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한다. 새로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다 익숙함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익숙함의 아름다움을 말한 시를 하나 놓고 가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GajVU7CGk&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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