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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이기는 '이' 글쓰기

내 이야기 인공지능은 대신 못 쓴다(1)

by 이가령

인공지능을 이기는 ‘이’ 글쓰기

나는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팀 쿡 애플 ceo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내가 요구만 하니 글을 써 주네. 신기한 일이지. 처음 ChatGPT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우선 자기 이름을 한 번씩 넣어 보고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실망했다. 뭐야 이거 순 엉터리잖아. 내가 무슨 서울대학을 나와? 그러면서도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고 발 빠른 사람들은 ChatGPT를 어떻게 활용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연구해서 책을 쓰기도 하고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ChatGPT의 능력은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ChatGPT는 불과 몇 달 만에 보통명사처럼 되었다. 구글이 만든 Gemini 마이크로소프트사의 Copilet 그 밖에 다른 대규모 언어 모델 인공지능이 많이 나왔다. (여기서는 ChatGPT를 대규모 언어 모델 인공지능을 대표하는 말로 사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人工智能, 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작성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문맥에 따라서 ‘인공지능’을 쓰기도 하고 ‘AI’를 쓰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과제를 내주면 ChatGPT가 써 준 답을 그대로 제출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걱정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ChatGPT는 시와 소설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 문학은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일을 보조하며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해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며,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한 소설가가 ChatGPT를 써보고 나서 박사급 연구원 10명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 말은 자료를 수집하고 글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연구원 같은 자격으로 ChatGPT를 활용한다는 것이지 소설가가 자기 대신 소설을 써달라고 한다는 말은 아니다. ChatGPT가 나오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기(Working with AI)’의 시대를 예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문가들만 이러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AI는 특정한 기능에 특화된 도구에 가깝다. 하지만 AI의 학습 능력, 데이터 처리 능력,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범용 인공지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AGI는 특정 작업에만 최적화된 현재의 AI(ANI, Narrow AI)와 달리, 인간처럼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AGI 시대가 온다는 것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AI가 등장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기술적, 윤리적, 철학적 관점에서 아직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결국 AGI의 시대는 단절적으로 ‘온다’기보다, 지금 우리가 AI를 점점 더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훨씬 넓고 깊게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것은 분명 하한 일이다.


다음은 인공지능이 써 준 봄에 대한 에세이다.

봄의 첫 느낌은 대개 공기 속에서 찾아온다. 서늘한 겨울의 냉기가 사라지고,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대지의 냄새, 먼 곳에서 불어오는 꽃향기, 아직은 조심스럽게 피어나기 시작한 새싹들의 푸른 색감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긴 겨울의 휴식을 마치고 자연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활력은 마치 우리에게도 에너지를 불어넣는 듯하다.

봄은 또한 기다림의 계절이다. 꽃봉오리가 조금씩 피어날 때까지의 긴 시간, 나뭇가지에 새로운 잎사귀가 돋아날 때까지의 인내는 봄의 본질을 닮아 있다. 그 기다림의 끝에서 우리는 언제나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벚꽃이 만개하는 날,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이 하늘을 채우는 장면은 봄의 절정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그 짧고도 찬란한 순간들은 인생의 아름다운 찰나를 닮아있다.


문장이 서걱거리는 곳도 없고 틀린 말도 없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봄에 대한 글이 되었다. 이렇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만 담는 글쓰기로는 이제 ChatGPT를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역할을 위협하고 있다. ChatGPT와 같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며,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글을 생성할 수 있다. 이제 정보를 수집하여 나열하거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을 담은 글쓰기로는 AI를 이기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1997년 IBM의 딥 블루가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했고, 2011년에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왓슨이 인간 참가자를 압도했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바둑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배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나타난 이후 바둑계는 크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기존의 기보와 정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을 코치로 훈련하기 시작했다. 교육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프로기사들의 지도대국과 복기가 주요한 학습방법이었으나 이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한 학습이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끝난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단순한 정보처리나 지식 전달에 있어서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에게는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고유한 강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 핵심은 바로 인간이 지닌 독창성과 창의성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 인식과 분석에 능하지만, 창의적 사고나 감정적인 깊이를 담은 작업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이 부분이 바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의성과 독창성은 글쓰기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창의적 글쓰기의 핵심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를 처리하고 결합하는 방식으로 글을 생성하지만,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은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은 작은 사건들, 여행에서 느낀 감정, 실패와 성공을 통해 배운 깨달음은 모두 각자 다르다. 이러한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고유한 감정과 관점을 담고 있으며, 그 자체로 독창적인 가치가 있다.

다음 글을 보자.


민들레 밥상

민들레가 아주 좋은 건강 채소라는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집 근처가 민들레 천지였다.

일요일, 민들레를 캤다. 무른 땅이라 칼끝이 민들레 뿌리 쪽으로 잘 빠져든다. 한참을 캐 보니 비닐봉지가 불룩해진다. 갓 뜯어온 민들레를 정성 들여 씻었다. 박박 솔로 문질러 씻고 헹구고 또 헹군다. 특히 뿌리는 집중 공략을 한다. 식초를 떨어트린 찬물에 민들레가 잠기도록 담가 두었다. 한두 시간이 지난 후 물기 제거용 샐러드 통에 넣어 돌리니 민들레는 초록색 이파리를 날개처럼 들고 살아나 있다. 초고추장 양념으로 민들레를 무쳤다. 민들레는 맛이 쌉싸름하다. 이 적당한 쓴맛이 되레 입맛을 돋워, 내가 매일 민들레를 캐게 만든다. 올봄은 민들레에 맛 들인 새로운 봄이 되었다.

이 글은 이 사람만 겪은 봄의 일을 쓰고 있다. 이렇게 해야 글의 독자성을 가질 수 있다.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려고 노력하라. 사랑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사랑을 직접 말하면 실감이 떨어진다. 사랑을 직접 말한 가장 대표적인 문장이 성경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을 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4) 이보다 더 정확하게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에 대해서 직접 말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 다 쓰여 있다. 그러니 나는 사랑을 설명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같이 나누어 그 시답지 않지만 재미있었던 대화 같은 것을 써야 한다. 감정을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제가 참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하고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내가 왜 기분 좋은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제가 오늘 건강 검진 결과를 받았는데 속을 끓이던 그 종양은 물혹으로 판면 받았습니다. 암이 아니래요.”라고 말하면 ‘기쁘다’는 말이 없어도 기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으로 먼저 전달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체험을 꼼꼼히 적어야 한다. 체험이 담긴 글은 독자를 더욱 생생한 경험으로 이끈다. 글쓴이의 체험을 통해 독자는 특정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글 속 감정과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봄날에 겪은 한순간—그때 본 꽃, 함께한 사람, 느낀 공기의 냄새 같은 구체적인 요소들은 독자가 그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세밀한 묘사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독자가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힘을 지닌다.

체험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변화된 인식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산책 중 느낀 바람의 시원함, 문득 떠오른 생각, 주변 풍경과의 상호작용은 그 사람만이 경험한 고유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과 경험을 글로 풀어낼 때, 독자는 깊이 공감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이는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자, 인간의 독창성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창의성도 경험에서 나온다

창의적인 글쓰기는 단순한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그 경험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여행기를 쓸 때에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는 그 여행이 가져온 삶의 변화나 새로운 인식을 담아야 한다. 경험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풀어내면, 글은 더욱 깊이 있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고,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인공지능이 생성한 기계적인 글과 차별화된다.

결국, 창의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목소리와 고유한 경험을 담아내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세밀한 감정과 변화를 이해하거나 창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글쓰기는 자기 체험에서 출발한, 진정성 있는 글쓰기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내가 느낀 감정을 담은 글'이야말로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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