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시대, 자기 이야기 쓰기의 의미와 가치

내 이야기, 인공지능은 대신 못 쓴다(2)

by 이가령

AI 시대, 자기 이야기 쓰기의 의미와 가치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누구인지가 결정된다."

— 토마스 킹,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과정이다. 심리학에서는 ‘내러티브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정리하면 삶의 의미와 방향을 더 분명히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자신의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실제로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극한의 경험을 글로 기록하며,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자기 발견과 치유가 반드시 극단적인 경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억울한 일이나 상처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칠 수도 있지만, 글을 통해 그것을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글로 정리하며 의미를 찾고 성장의 계기로 삼으면,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이 높아진다. 결국,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감정을 건강하게 정리하는 과정이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사람들의 시시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은 사회 결속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의 뇌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힘든 경험이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하면, 상대방도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또한, 글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깊이 연결될 수 있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유될 때, 사회는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직접 쓰는 글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글을 생성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자신만의 역사, 감정, 경험을 담지는 못한다. 반면, 인간이 쓴 글에는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와 감정이 녹아 있어 더욱 진정성이 있고 특별하다. 사람은 직접 겪은 기쁨, 슬픔,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의 깊이는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그 의아함 황당함 아련함 약간의 원망 등등이 섞인 이 감정을 AI는 표현하기 어렵다. AI는 성장 배경이 없고, 남의 경험을 학습한 것이라서 사실 문자가 발명된 후의 인류가 작성한 '글' 그 자체의 온톨로지(Ontology), 즉 존재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글은 '진짜 경험'에서 나온다. 우리의 삶은 기쁨과 슬픔, 도전과 좌절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느낀 감정과 깨달음은 데이터의 조합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좋은 글은 결국 '나'라는 주체에서 출발하며, 내 경험과 생각이 반영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글은 단순히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고 마음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희망의 빛이 되기도 한다. 상처받은 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가닿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공지능을 이기는 '이'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