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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세상의 주체

내 이야기, 인공지능이 대신 못 쓴다(3)

by 이가령

“나는 내가 쓰는 글로 존재한다.”

— 장 폴 사르트르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선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쓸 때 우리는 종종 ‘나’를 감추거나 소외시키기도 한다. ‘나’가 분명한 글이 있는가 하면, ‘나’가 사라진 글도 있고, ‘나’가 있음에도 소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1. ‘나’가 드러나는 글


‘나’가 드러나는 글은 개인의 생각과 경험이 선명하게 반영된 글이다. 문론 1인칭 시점을 사용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나’가 드러나는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의 감정, 가치관, 그리고 독특한 관점이 뚜렷이 나타날 때 비로소 독자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어릴 적 매일 저녁, 할머니께서 삶아주시는 옥수수를 먹곤 했다. 옥수수 알을 하나씩 떼어먹으며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할머니는 묵묵히 들어주시다가 '오늘도 수고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이 글에서는 '나'의 경험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할머니와의 대화와 그 속에서 느낀 감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독자는 마치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단순한 전달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러한 표현은 독자가 나의 감정과 상황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옥수수를 먹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유년 시절의 따뜻한 기억과 가족 간의 소통을 떠올리게 되어, 자연스럽게 정서적 연결을 이루게 된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주인공이 끝내 선택하지 못한 결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불편했다. 우리는 흔히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보여준다. 그 점이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이 비평에서도 ‘나’의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개인적인 감정과 반응이 글의 중심을 이루며, 이러한 주관적인 경험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나’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혼란을 표현하면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관 - 즉,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믿음 -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글이 더욱 설득력 있고 생동감 있게 전달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결국, ‘나’가 드러나는 글은 단순한 1인칭 서술을 넘어 독자의 감정과 경험을 깊이 있게 전달해 준다. ‘나’의 감정과 가치관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 독자는 자연스럽게 글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독자와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2. ‘나’는 있는데, 단절된 글

글에 ‘나’가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만 존재하고, 독자는 후경으로 물리친 채 독자와 단절된 글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주로 두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다. 먼저 표현이 부족할 때다. 자기 경험이나 감정을 나열하고 있어, 독자가 그 상황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두 번째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강할 때 단절된 글이 나타난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강조하여 공감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를 드러내면서도 독자가 그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표현을 풍부하게 하거나,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각각의 경우를 더 깊이 살펴보자.

1. 독백 같은 글: 독자와의 연결이 부족한 경우

글은 자기가 겪은 상황을 자세하게 적어 독자들이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훤히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독백처럼 보이는 글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글의 가장 큰 문제는 경험을 나열하기만 하고, 독자에게 그 상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는 마치 감정을 담지 않고 일정만 적어 놓은 다이어리와 비슷하다.

“나는 어제 공원에 갔다.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괜찮았다.”

일기에 적었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크든 작든 어떤 자리에 발표를 하는 글이라면 (카톡에 적는 것, 블로그에 적는 것도 넓게 보아서 발표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어 줄 것이라는 생각한다면 모든 상황이 발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정보가 부족하다. ‘공원’, ‘날씨’, ‘바람’, ‘기분’이라는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두 번째, 정보가 부족하니 독자가 공감하기 어렵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쳐서, 독자가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없다.

만약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고 해 보자.


“어제 공원에 갔다.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문득, 한참을 지나간 가을 냄새가 남아 있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독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나’가 경험한 순간을 함께 느끼게 된다. ‘맑은 하늘’, ‘솔솔 부는 바람’, ‘가을 냄새’ 같은 감각적 요소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또 자기감정을 직성으로 ‘기쁘다’ ‘슬프다’하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 기쁘거나 슬픈 감정이 일어난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하려면 ①단순한 사실 나열에 그치지 말고 느낌과 감각을 표현할 것 ② 독자가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도록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을 것을 유념해 보면 좋겠다.

2. 자기중심적인 글: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

이 유형의 문제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나’의 생각만 강조하는 경우이다. 이런 글은 독자가 공감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10km를 뛰고,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다. 이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 이해가 안 된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 측면에서 바라보면 글을 읽는 사람이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표현은 단절감을 준다.

강한 주관이 공감을 방해한다. 자신이 옳다고 강조하는 태도는 독자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3. ‘나’를 감추는 것이 필요한 글

글을 쓸 때 우리는 흔히 ‘나’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나’를 감추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특히 객관적인 정보 전달이 중요한 글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뉴스 기사, 학술 논문, 보고서, 공문서, 설명문 등은 사실과 논리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글쓴이의 주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는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려 하지만, 이 객관성이야말로 뉴스의 가장 주관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감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독자는 감정적인 해석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원하며, 이는 특정한 글쓰기 방식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뉴스 기사는 독자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기자의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기자의 주관이 개입되면, 기사는 사실 전달이 아니라 칼럼이나 사설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나는 서울시의 LED 조명 교체 정책을 환영한다. 환경 보호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야경도 한층 밝아질 것이다.” 이 문장은 기사의 형식을 벗어난 주관적인 글이다. 이를 객관적인 뉴스 기사로 수정하면 “서울시는 2025년까지 공원 내 조명을 LED로 교체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에너지 절감을 위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정도가 되겠지. 이처럼 뉴스 기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며, 기자의 의견이 배제될 때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감추고 있다.


연구 논문 역시 ‘나’를 감추는 글이다. 논문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구성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되면 논문의 신뢰성이 흔들린다. 예를 들어, 한 연구자가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해도, 논문에서는 “나는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면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느꼈다.” 이렇게 서술하지 않는다. 대신 “최근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증가할수록 청소년의 집중력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식으로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인용해야 하면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뉴스 기사, 논문, 보고서, 공문서 같은 글은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사실과 논리로 글을 구성하면 오히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글쓴이의 개입을 최소화할수록 내용이 더 힘을 얻고, 본질적인 진실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나’를 배제하는 것이 때로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글에서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글에서는 ‘나’를 감추는 것이 신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결국 좋은 글쓰기는 ‘나’를 감출 때와 드러낼 때를 구별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글의 목적과 독자를 고려하여 ‘나’를 사용할 것인지 감출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쓰기의 힘이다.

4. ‘나’에게 진짜 의미 있는 글을 써라

글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잘 쓴 글이 많다. 그러나 내가 ‘잘 쓴 글’ 의 필자 속에 들지 못해도 괜찮다. 대신, 나에게 의미 있는 글을 쓰는 필자 속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기록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감춰진 감정을 발견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삶과 마주하는 질문을 담아야 오래 남는다.

삶의 질문이 깊을수록, 글도 깊어진다. 어느 날, 나는 너무 바쁜 생활 속에서 피로골절(疲勞骨折)로 갈비뼈가 부러졌다. 조금씩 쌓인 피로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해 나를 무너뜨린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급하게 멈춰 서게 된 순간, 거울 속에서 지친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지금 행복한가?”

우리는 매 순간 이런 질문을 품고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어떤 구비에서는 반드시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 깊을수록, 그 글도 깊어진다. 피로골절을 겪고 난 후, 나는 내 몸을 더 아끼고, 내 삶의 속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단순한 사건을 넘어, 그 경험이 나에게 남긴 의미를 탐구하게 되었다.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대신, 우리가 삶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는 빅터 플랭클의 말처럼 진짜 의미 있는 글은 ‘나’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의미 있는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 쓰는 글,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글이 되어야 한다.

남을 의식하는 순간, 글은 의미를 잃는다. 솔직한 글이 불러올 파장에 대한 걱정은 그 글을 발표할지 말지의 문제일 뿐, 글을 쓰는 순간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글을 쓸 때는 감정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글은 강한 울림을 갖는다. 진짜 의미 있는 글은 지금의 감정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에게 의미를 남기는 글이다.

“나는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참 예뻤다. 그렇게 작은 순간이 쌓여서, 내 인생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글은 단순한 일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지만, 결국 그 하루가 모여 ‘나’를 만든다.

잘 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글이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을 위해 꾸미는 글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 감춰진 감정을 발견하는 글을 써야 한다. 결국, 진짜 의미 있는 글은 ‘나’와 마주하는 글이다. 그렇게 써야 글이 오래 남고,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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