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인공지능은 대신 못 쓴다(4)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만, 좋은 글은 독자가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한다."
-앤드루 숄츠(Andrew Solomon)
우리는 글을 쓸 때 솔직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솔직함이 곧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쓰는 것은 중요하지만, 독자와의 소통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자기중심적인 글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나’의 생각만 강조하는 글이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10km를 뛰고,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다. 이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 이해가 안 된다.”
이 글은 분명 솔직한 표현이지만, 독자가 공감하기 어렵다. 왜 문제가 될까? 글을 읽는 사람이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현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10km를 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하루가 훨씬 활기차게 느껴진다. 물론 누구에게나 맞는 방식은 아닐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습관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쓴다면 그 거부감이 줄어든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현을 빼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솔직하게 쓰라는 말은 독자를 무시하고 ‘나’만을 강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솔직함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다. 솔직한 자기 목소리를 내되, 그것이 독자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쓰기는 솔직함과 배려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려면 솔직하게 쓰면서도 독자가 멀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되,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렇게 한다. 그러니 너희도 이렇게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한다. 이 방식이 나에게는 잘 맞는다.”(○)
물론 첫 문장처럼 써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은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도 첫 문장처럼 쓰면 반발을 일으키기 쉽다.
“나는 이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방법이 나에게 맞았고, 이런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독자의 반응은 달라진다. 첫 번째 문장은 단정적인 어조로 인해 독자가 반박하고 싶어질 수 있지만, 두 번째 문장은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이어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 쉽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다르다. 솔직함이 당당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면서도,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는 태도를 보일 때이다.
연봉 협상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3년 동안 일했는데 이 연봉은 너무 적어요.”
“저는 3년 동안 기여해 왔고, 성과도 높았습니다. 연봉 인상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두 표현 모두 같은 취지이지만, 첫 번째 문장은 감정적인 불만처럼 들릴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문장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이라 더욱 설득력이 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줄이면서도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네가 솔직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끝이야.”
“나는 솔직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해. 서로 이야기하며 해결하고 싶어.” 첫 번째 문장은 상대를 몰아붙이며 단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지만, 두 번째 문장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방과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솔직하다고 해서 반드시 직설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함과 배려는 공존할 수 있으며,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솔직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나’를 강조하면서도 독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단정적인 글은 독자의 생각을 배제하고, 오히려 글의 공감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박완서 작가는 『나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만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말은 글을 쓸 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자의 경험과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만 존재하는 글은 독자와 단절될 위험이 있지만, ‘나’의 이야기가 곧 ‘너’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쓰인 글은 공감의 힘을 가진다.
좋은 글은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자가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글이다. 솔직함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때 더욱 설득력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결국, 솔직한 글쓰기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다리를 놓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