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ㅇ야기 인공지능이 대신 못 쓴다(5)
"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찾아내는 눈과 기록하는 용기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
“글을 쓰고 싶은데,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이 글을 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소재 부족’이다. 하지만 정말 쓸 게 없는 걸까? 사실 우리의 일상에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다만 그것을 포착하는 눈과 기록하는 습관이 부족할 뿐이다.
소재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가까운 일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 속에는 예상치 못한 재미와 감동이 숨어 있다. 사소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순간, 혹은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글로 남으면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다음 글을 보자
“내가 안 잔 것도 써요?”
나는 어린이집 교사다. 어린이집에서는 낮잠 자는 시간이 있다. 모두 양치질을 마치고 교실로 모였다. 미리 펴놓은 자기 이불을 찾아 달려간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엄마가 그리운지 울기 시작한다.“엄마, 엄마 엉엉엉” 나는 달려가서 우는 보미를 달래주었다. 그러자 그 소리가 시끄러운지 재민이가 “아, 찌끄러워. 선생님 찌끄러워요..” 하고 슬그머니 내 품으로 온다. 나는 보미와 재민이를 차례로 눕히고 어린아이들의 기저귀를 봐주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녀석을 떠 포옥 안아주었다. 스킨십을 하며 아이들 하나하나 잠자리에 들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모두 꿈나라로 향했다. 모두 잠이 들었나 했는데 다애는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소리로 “선생님 뭐해요?” 한다. 조금 큰 언니 반 아이다. 다애 안 자?” 나도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이 안 와요.” 한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 지금 일지 써. 이따 엄마들한테 보내드릴 일지. 오늘 다애는 잘 놀았습니다. 이런 거 적어드리는 거야.” 그랬더니 “그럼 내가 잠 안 잔 것도 써요?” 한다. 그래서 내가 살짝 웃으면서 끄덕였더니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다애까지 잠을 자니(잠든 척을 하고 있으니) 잠깐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어린이집 일은 힘들고 고되다. 하지만 이런 천사들 하고 노니 그 맑고 고운 정기가 다 나한테 오는 것 같아서 고맙다.
이 글은 어린이집 교사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아이들과의 따뜻한 교감을 생생하게 그려낸 글로, 섬세한 관찰과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늘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어느 한순간을 도려내어서 보면 똑같은 경험은 없다. 이날 아이와 나눈 사소한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적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살아있는 글이 나왔다.
글에서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졌다. 보미와 재민이, 다애의 행동과 대화는 각각의 개성과 분위기를 잘 드러내며, 독자가 마치 어린이집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린이집 교사의 힘든 일상을 솔직히 표현하면서도, 아이들과의 교감에서 얻는 기쁨과 감사함을 강조했다. 이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 교사의 직업적 보람과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이 글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을 뿐.
이처럼 감정이 깊이 스며든 글은 독자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독자는 무심코 사건을 따라가며 읽는 것 같지만, 무의식적으로 글의 분위기와 정서를 흡수하고, 그 감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특히, 따뜻한 시선으로 쓰인 글은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글을 다 읽은 후에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독자들이 글을 읽으면서 글이 전달하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현상을 ‘잠재적 영향’ 또는 ‘무의식적 영향’이라고 한다. 이는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내용에 담긴 감정, 교훈, 메시지 등을 명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더 넓은 개념으로는 잠재학습(latent learning)이라고 한다. 잠재적 학습은 우리가 항상 의도적으로 학습하지 않더라도 환경과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잠재학습으로 처리한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보들은 내면 깊숙이 숨어 있다가 필요한 시점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일도 많다.
남편하고 있었던 일을 쓴 그 일이 ‘나는 독자들에게 올바른 대화법을 알려 주어야 하겠어.’라고 굳게 마음먹고 글을 쓴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도 글은 그렇게 독자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생활 속의 이야기 속에도 깊은 의미가 담길 수 있기에, 이런 글은 더욱 가치가 있다.
오늘 아침 아이들과 나눈 대화나 모바일에서 읽었던 기삿거리에서 아이의 유아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글감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서 느꼈던 힘듦과 즐거움, 당신이 보낸 하루,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어깨너머로 들리던 이야기, 당신의 꿈을 들어 올려 보라. 에너지가 에너지를 부르듯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를 부른다. 좋은 글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더 깊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글감으로 선택하려는 눈으로 보면 발 닿는 곳마다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사소한 이야기를 적어보자. 앞서서 본 것처럼 의미는 사소하지 않다. 작은 일상이 가진 의미가 크다. 관념이나 제도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라. 거기에 이야기가 있다.
‘나’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이렇게 글을 쓰면서 차츰 ‘나’의 갈등을 ‘너’의 갈등으로, 그리고 ‘우리’의 갈등으로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글은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전달하는 의견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일기처럼 외부 독자를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글이 아니라면, 내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읽어 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되니 글쓰기는 공적인 행위가 된다. 따라서 글의 내용과 지향점을 ‘나’에서 ‘우리’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집 아이가 밤길에 불량배를 만나 피해를 입었다고 하자. 이 사건은 처음에는 우리 아이, 또는 우리 가족의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더 넓게 보면, 귀갓길에 불량배를 만나는 일은 우리 아이뿐 아니라 이웃, 우리 동네,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확대해서 해석해 보고 독자를 그 일에 포함시키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글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글쓰기는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문제로 확장하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공적인 행위가 된다. 이렇게 접근하면 독자와 더 가까이 더 깊게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