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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에게 애국심을
다시 배우다

서울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가묘를 참배하며

by 이브런

5일 일요일 순국선열의 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을 찾았다. 달포 전 관람한 영화 ‘영웅’의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잔상에 이끌려 들른 것이다. 10년 전 효창운동장에서 개최한 ‘이북도민 체육대회’ 행사를 마치고 이곳을 들렀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공원 창렬문 입구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공원 내부는 그새 광복 70주년 기념광장과 조형물을 조성하고 곳곳에 나라꽃 무궁화 식재공간을 마련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탁자와 의자 등 편의시설도 확충해 묘역의 품격이 한층 높아 보였다.


새로 들어선 시설 중에 광복 70주년 기념 ‘태극조형물’은 등록문화재 태극기 10기를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선조들의 태극기 사랑을 일깨우고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 인쇄하기 위해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태극기목판’은 마치 현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 선명했다.


또한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 주석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매우사> 신부에게 건넨 태극기에는 미국동포들의 광복군 지원을 긴밀히 부탁하는 내용과 서명이 절절이 담겨 있다. 이른바 밀서 형태의 태극기다.


6.25전쟁 중 태극기도 볼 수 있다.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는 1950년 10월 유관종 소위가 호남지구 진격작전 당시 부대원들의 각오를 담고 있다. 이처럼 태극기는 우리나라 역사적 사건들과 궤를 같이하며 현장을 증거 했다.


효창공원에서 핵심적인 묘역은 역시 정상에 자리한 삼의사 묘이다. 이봉창(1901-1932), 윤봉길(1908-1932), 백정기(1896-1934) 의사 묘와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는 곳이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빈 무덤(가묘)의 검은색 묘비는 다른 의사 묘비 보다 유달리 도드라져있다.


나는 안 의사 묘 앞에서 정부와 우리 후손들이 아직껏 유해를 찾지 못한 것에 사죄하고 유해발굴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와 별도로 세월이 갈수록 의사를 추모하는 열기가 다양한 장르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묵상으로 추모했다.


참배하고 뒤로 물러서는데 옆에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애들은 잠시 묘를 바라보더니 넙죽 엎드리며 재배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적어도 내 눈에는 애들답지 않은 모습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애국선열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너무도 진지했다.


발길을 잡은 주인공들이 궁금했다. 서울 중랑구 원묵초등학교에 다니는 맏이 5학년 김주하 군, 4학년 동생, 1학년 막내 등 삼 형제들이다. 김 군은 “여기 잠들어 계신 존경하는 이분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존재한다”며 제법 어른다운 말을 했다.


어떻게 이 곳에 왔냐는 질문이 부끄러울 정도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잊어버린 애국심을 잠시 떠올렸다. 우리 어린아이들의 역사관은 물론 국가관마저 솔직히 의심하고 있던 터라 김 군의 대견하고 당당한 대답은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필자와 자녀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 군의 어머니는 "공원 근처가 시집이기에 가끔 오는데 올 때마다 아이들이 이곳에 들러 꼭 참배하고 간다"고 귀띔했다. 김 군의 아버지도 자녀들에게 역사를 늘 강조한다고 했다.


김 군의 가정처럼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날 삼의사 묘역을 여러 사람이 찾았지만 대부분 묘비를 확인하고 스치는 정도였다. 삼 형제의 참배는 묘역 기단에 아로새긴 유방백세(遺芳百世) 의미대로 순국한 의사들의 영원한 발자취를 대변하고 있었다.


한편, 삼의사 묘 이름과 관련, 명칭을 ‘사의사 묘’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안 의사 가묘 상태를 늘 강조하면서 언제까지 삼의사 묘라 고집할 것인가? 의사의 유지는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안 의사 순국 113년, 그간의 안 의사 유해발굴 과정을 감안할 때 명칭 변경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극적 검토를 기대한다.

공원 내 또 다른 묘역인 '의열사'는 임정요인(이동령, 김 구, 조성환, 차리석)과 삼의사 포함 7인 독립운동가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그런데 안내 표지 설명과는 달리 훼손을 이유로 개방하지 않아 유감스럽게도 참배하지 못했다.


사족이지만 의열사를 참배하고 싶으면 별도 신청하라는데 이는 공원측의 일방적인 횡포나 다름없다. 참배객의 번거로움을 하루속히 해소해야 한다. 이곳도 다른 묘역시설과 마찬가지로 상시 개방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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