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보러 산에 간다..고령의 선배 사진 찍어주는 보람도
요즈음 '가을 단풍'을 즐기며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늦더위로 단풍이 시들거나 곱지 않다고 하지만 단풍 구경하기 좋은 시기다.
10여 년 전 등산을 시작할 때는 어디를 가든 체력이 받쳐주었다. 달마다 가는 정기 산행이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산행이 힘들었다. 4시간 이상 산행을 하거나 하산할 때에 무릎이 시리기 시작했다. 관절에 퇴행성 질환이 나타난 것이다.
무릎 밴드와 테이핑을 하면서 산행을 계속했지만 무리한 탓인지 점차 후유증이 심해졌다. 등산을 자제하자 자괴감과 우울증마저 생겼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나만 겪는 것이 아니었다. 산행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산행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포기했다.
자연히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고 소원해졌다. 내가 친구들과 산행 대신 둘레길이나 고궁 탐방을 고려한 배경이다.
하지만 산행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산행은 못해도 단풍 산행을 빌미로 얼굴을 보자는 친구들이 나타났다.
자기 체력에 맞는 운동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산에서 서로 얼굴 보는 기회가 거의 없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물론 산행에는 함께하는 선후배도 있다. 그러나 친구만 한 동료가 있을까. 산에는 아름다운 풍광만이 아니라 벗들도 있는 것이다.
실제 혼자서는 결코 산에 가지 않는다는 친구가 있다. 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동문 등산모임(인산회)이 주관하는 설악산 단풍산행에 참가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동창 세 명이 오랜만에 함께 했다.
인산회는 고령의 동문들이 많아 연령대를 감안해 '산행조'와 '둘레길조' 두 개로 나누어 회원을 안내하고 있다.
산행조는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상당수가 여기에 참가한다. 이에 반해 둘레길조는 산 주변에 조성된 둘레길을 주로 걷는다.
나와 친구들은 오색약수 주전골 둘레길 코스를 선택했다. 마침 주변에는 노약자들도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무장애탐방로'를 깔아놓았다.
소위 '관광조'라고 불리는 둘레길조에는 30여 명의 동문이 참가했다. 주로 체력이 약하거나 대부분 고령이다. 그러나 과거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둘레길조에는 90대 고참 선배 세 분이 깊은 우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분들은 각자 형편에 맞게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던가. 공자는 어진 이는 산을 찾아 장수를 즐긴다고 했다. 시쳇말로 '돌진산'(돌아온 진짜 산사나이)이라고 칭할 만하다.
이날 서울과 경기에 사는 세 분 동창생이 의기투합해 원정산행에 나선 것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이 설악산을 찾은 이유가 비단 단풍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둘레길 조에서 조그만 보람도 발견했다. 이곳에 온 90세 넘은 원로 선배들의 사진을 찍어 현장에서 자녀나 가족들에게 보내주는 작업이다.
만류에도 산행을 고집하는 선배들 때문에 가족들은 내심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선배를 모시고 오는 경우도 가끔 있다.
또한 산에서 '셀카'를 찍어 카톡으로 보내달라는 자녀들이 있는데 고령의 선배들에게 그게 여의치 않다. 사진을 찍다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최고령 김아무개(92) 선배님이 등산하는 모습을 딸에게 보내드렸더니 선배님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 분들은 후배들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산에 온 것이다. 사소할지 모르지만 9 순 선배들의 현장 사진을 보내는 것도 가족을 안심시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산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가면 소중한 친구와 선배들을 볼 수 있어서다. 그들은 단풍만큼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