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이 고객도 아끼는 법

구두수선공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다

by 이브런
IE003394366_STD.jpg ▲구두박스, 수선공은 고객이 주는 돈을 비닐 주머니에 잘 접어 간직하고 있다



지난주 동네 큰 길가 구두수선하는 곳(일명 구두박스)을 찾았다. 겉은 멀쩡한데 바닥만 떨어진 운동화를 수선의뢰했다. 수선공은 이런 경우를 흔히 접하는지 고쳐놓겠다며 한 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시간에 맞춰 가니 그는 운동화 수선을 마치고 다른 손님의 구두를 닦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며 오랜만에 광택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손님에게 닦은 구두를 건네면서도 안창을 온열기에 갖다대 따뜻하게 하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어 그는 수선한 운동화를 보여주며 당장 신어도 괜찮을 정도로 고무바닥을 완벽하게 붙였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정말 새 운동화처럼 말끔하게 보였다.



수선비 2만 원을 내미니 그는 허리춤에서 비닐주머니를 꺼내 잔돈 8천 원을 거슬러주었다. 비닐 속 지폐는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빳빳했다. 그리고 잔돈에는 그의 체온마저 묻어있었다. 투명비닐로 접어 만든 지갑은 흡사 투명 비닐 약봉투처럼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언젠가 구두를 닦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그 비닐주머니에서 꺼내 주었다. 그의 돈은 여느 돈보다 귀중하게 보였다.



그때 돈을 그렇게 소중히 다루는 연유를 물은 적이 있는데 자기 나름 고객돈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 말에는 고객돈을 다루는 그만의 철학이 깃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80대 중반으로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다고 했다. 하루 수입은 10만 원 내외 30년 이상 이 좁은 구두박스를 지키며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까지 다 시켰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내심 부러웠다.



수선공은 수십 년 단골이 많아 자리를 비우거나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한다. 매주 한번 구두박스 옆에 오는 땅콩장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기다리는 고객들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구두수선보다 운동화수선이 더 많다고 한다. 구두 닦는 사람도 줄었다. 그만큼 운동화 신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리고 구두 못지않게 비싼 운동화가 많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구두박스가 이제는 운동화박스로 불릴 만큼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구두수선공이라는 직종도 운동화 수선공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들른 구두박스의 수선공의 친절과 직업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내가 그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자리를 오래 지키는 동네 업소나 가게들이 제법 있다. 오가다 눈에 밟히고 이런 곳의 매력을 우연히 접하는데 구두박스도 그중 하나이다.



구두수선공은 잔잔한 감동에 인생 사는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객 돈을 비닐주머니에 접어 간직하는 그는 내게 겸손과 감사의 태도를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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