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송년카드를 보내면서... 은혜를 되새긴다
▲자료사진, 손글씨 카드나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 unsplash관련사진보기
올해를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이다. 해마다 이맘때 연례행사처럼 송년카드를 준비하고 보내는데 유독 상념이 깊다.
올봄과 여름은 내내 집수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얼마나 덥고 지루했던가. 집을 고치고 살림을 내고 들이는 것이 이처럼 고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집은 보다 젊을 때 손보는 것이 현명하다.
수리 후 새집에 들어서니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나 셋이 무탈하게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실제로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열명도 안 되는 사람에게 송년카드를 보내는데 하루가 걸렸다. 이제는 편지조차도 생각대로 후딱 써지는 것이 아니다.
카드를 앞에 놓고 한해 정말 고마운 분들을 손으로 꼽아본다. 여기에는 가족과 지인 여럿 포함되지만 그중에서도 송년카드를 보낼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해마다 보냈던 송년카드 두 매의 주인공이 없다. 두 분이 고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움은 남아 두 분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제 편지로도 감사를 드릴 수 없다는 현실이 애통하다. 대신 세명을 새로 선정해 보내기로 했다. 이 분들 역시 평소 내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 분들이다.
먼저 한 분은 아버지 이북고향 상아무개(87)어르신이다. 매달 한 번 집 근처에 와 아버지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분이다.
백수를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식인 나보다 아버지를 더 챙기는 그분의 배려가 너무 고맙다. 기억하기로 올해로 5년째다.
아버지는 후배의 정성에 감복해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도 그분의 면모에 감화돼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내가 두 분과의 오찬날짜를 새삼 기다릴 때도 있다.
지난달에는 오찬 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간 적이 있는데 사달이 자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어진 분이다.
또 한 사람은 고등학교 5년 후배다. 후배에게 손글씨 카드를 보내다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모르겠다. 후배지만 그가 내 손아래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지방에서 내게 몸에 좋다는 걸 챙겨 올 정도로 정이 깊다.
특히 후배는 올해 내 칠순 생일기념으로 여행을 시켜주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추억을 들려준다며 2박 3일 강진과 완도를 안내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이벤트였다.
그와 명사십리 해변을 걸으며 나누던 대화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때가 되면 안부를 전해주는 후배가 고맙다. 내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그를 통해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진심이 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추가했다. 올해 우리 집수리 현장을 찾아와 고생한 동창이다. 자기 사업도 있어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는 자기 집 고치는 것 마냥 하루가 멀다 하고 와 현장을 지켜주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기피할 정도로 애써준 친구 덕분에 말년의 우리 집은 그럴듯하게 단장됐다. 친구의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는 진정한 친구가 어떠한 모습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보니 송년카드를 보낸 이들은 카톡이나 문자로 유난스럽게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그리움이 늘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에게 이런저런 신세만 졌지 은혜에 보답한 것은 하나 없어 면구스럽기만 하다. 올해도 알게 모르게 무심한 나를 아끼고 지켜준 지인들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손글씨 편지나 카드에 감사를 담아 보낸다면 더욱 뜻깊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