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없다'는 표현의 진짜 속내는 이것입니다

아내가 김밥을 해 먹자고 한 까닭?

by 이브런
IE003395382_STD.jpg ▲김밥은 대충 때우는 음식이 아니다. 준비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정성이 요구된다



저녁메뉴를 '김밥'으로 정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이다. 아내는 점심상을 치우면서 저녁밥은 무얼로 할지 내게 물었다. 이런 질문은 사실 아내가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저녁때쯤 가서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방금 밥을 먹고 다음 끼에 먹을 것을 생각하고 답하기는 정말 곤혹스럽다. 그런데도 아내는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아내는 끼니마다 국거리나 찌개 등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미리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식사 때가 돼서 금방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아내는 성격상 뭐든 미리 준비하는 버릇도 있어 아내에게 아무거나 당신이 해주는 대로 먹겠다고 답하는 것은 아내가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아내의 질문 속에는 저녁 준비가 힘들고 귀찮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는 걸 얼마 후 눈치로 알아챘다.



요즘 들어 아내는 밥 맛이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하여 가끔 외식을 권하지만 그게 전부 아니었다.



이전에도 아내는 "하루 두 끼만 먹은 면 안될까", "밥 안 먹고살 수는 없을까", "밥을 대신하는 알약은 없나" 등 푸념을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는 아내가 식욕이 없고 마뜩잖은 이유를 잠시 분석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먹는 게 귀찮다면 기분이 공허하고 반대로 뭔가 당기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이에 아내가 좋아하는 동네 코다리 식당에 가볼까 생각했는데 추운 날씨에 바깥 외출도 권하기 어려웠다.



사실 나도 저녁밥을 무얼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적어도 아내에게 저녁메뉴를 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아내는 갑자기 저녁메뉴를 김밥으로 제안했다.



나는 놀랐다. 김밥이라니. 대충 때울 때 김밥을 먹는다지만 만드는 작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게 얼마나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레시피인가. 김밥을 마는 것은 차치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귀찮은 작업이다.



많은 레시피 중에서 하필 김밥을 선택했을까 의아했지만 아내가 지금 당기는 음식은 김밥이었다.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나는 찬동하고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아내가 김밥을 마는 세프가 되고 나는 모든 재료를 다듬고 대령하는 주방보조를 맡았다.



김밥에는 무려 11가지 재료가 들어갔다. 달걀, 노란 무, 오이, 당근, 시금치, 맛살, 참치, 마요네즈, 어묵 등등. 재료 준비를 모두 마치니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의욕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IE003395381_STD.jpg ▲김밥을 만드는데 11가지 재료를 준비했다



이내 굵은 김밥 8줄이 완성됐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한 줄에 여덟아홉 개가 나오니 우리 집 세 식구가 두 끼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양이다. 아내는 김밥을 보며 든든한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은 아내표 김밥으로 해결했다.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아내는 평소보다 많은 김밥을 먹었다. 소화가 걱정될 정도였다. 나도 양껏 먹었다.



'입맛이 없다'는 말은 의욕이 떨어졌다는 의미



음식조리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먹는 것보다 설레고 즐거운 법이다. 이 때문에 아내가 애써 김밥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내는 때로는 사는 것이 힘들어 먹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는 것 같다. 허무한 갱년기 증상이랄까.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 무기력하고 식욕도 사라지는 이치다.



아마 내가 곁에 없다면 아내는 저녁을 굶고 지냈을 것이다. 같이 있기 때문에 먹거리를 걱정했던 것이다. 결국 김밥은 남편을 위해 마련한 음식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의문이 풀리고 정리가 된 느낌이다. 아내가 입맛이 없다는 건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일상이 지루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나로선 아내를 도와 뭔가 힘이 돼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해 보인다.



맛있는 김밥을 함께 해 먹으면서 아내가 그나마 삶의 희망과 욕구를 보여 주말 한때 즐거웠다. 이렇게 부부는 허한 마음을 서로 채워주고 북돋으며 사는지 모른다.



오늘도 부부가 사는 지혜 하나를 경험으로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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