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지
어제는 아버지가 6개월에 한 번 종합병원 노년내과에서 진료받는 날이었다. 고령이기에 늘 마음을 조아리지만 예약된 날짜와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어 다행이다.
대형병원에 가면 스스로 방문해 치료나 진료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노환이거나 오랜 지병으로 대부분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요양보호사를 대동한다. 아버지도 혼자 다니시기 힘들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걸 알아서 처리했지만 이제는 지팡이와 보호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병원은 또 자동인식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셀프 도착 확인, 셀프 혈압 체크 등 환자가 해야 하는 사전 절차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편리한 스마트시스템도 보호자에 의탁해 이용해야 하는 노약자들이 많은 현실은 고령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세상일은 아무도 몰라 내가 곁에 없다면 아버지를 누가 돌보고 누가 병원에 데리고 갈지 괜한 걱정을 했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진료실에서 이름을 불렀다. 주치의는 아버지의 검사수치와 지표들을 살피면서 연세에 비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고 말했다. 문진을 통해서도 전신건강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의사의 말이 고마웠다. 기대했던 소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초조한 환자에게 "특별한 게 없다"는 말만큼 반가운 게 없다. 의사는 종전과 같은 복용약을 처방했다. 아버지에게 진료결과를 따로 말씀드렸다. 보청기를 꼈지만 진료실에서 의사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표정이 이내 밝아졌다. 덩달아 나도 들떴다.
아버지는 진료 전 여러 검사를 받기 때문에 조반을 드시지 않는다. 진료가 끝나야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는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도 미리 상의하는 편이다.
아버지 취향에 따라 메뉴를 정하는데 병원 주변에 아버지가 선호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하지만 이날은 시간이 어중간해 동네 인근 추어탕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하기로 했다. 추어탕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식사를 거의 마친 아버지가 말했다.
"아비야, 집에 갈 때 어미가 먹을 추어탕도 포장해 가자."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던가. 아버지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의탁하지 않으려는 아버지는 특히 며느리에게 미안해 한다. 그러나 표현이 말처럼 쉬운가. 아버지는 내게 종종 아내에게 잘하라는 말로 대신한다. 추어탕 선물에는 그런 아버지 마음이 담겨있다.
아내도 시내에 외출했다가 시아버지를 위해 통닭을 가끔 사 온다. 아버지는 특히 전기구이 통닭의 가슴살을 좋아한다. 나 또한 덕분에 온기가 가시지 않은 닭고기를 맛보기도 한다.
추어탕 때문에 지난해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창이 느닷없이 집을 찾아와 음식을 놓고 갔다. 소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다. 외식하다 포장해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깟 된장찌개 얼마나 맛있길래? 생각해 보니 맛을 떠나 그 정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심코 받아 든 내 손이 부끄러웠다.
밥 먹자는 제안은 자주 하지만 친구와 막상 함께 식사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식언하기 일쑤인 나에게 그 친구는 맛있는 음식을 직접 가져온 것이다. 친구가 건넨 된장찌개를 앞에 두고 한참 바라봤다. 내가 너무 메마르고 이기적으로 산 건 아닌지 반성해보았다.
은퇴 이후 가까운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한둘 아니다. 소중한 가족과 친구의 존재를 잊을 때가 많았다. 새해엔 음식을 나눠 먹고 배려하는 미덕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기브 앤 테이크'이다. 서로 챙기는 마음이 있어 힘든 가정과 사회가 유지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