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결혼한 자녀와 보내면서 다짐한 것

우리는 서로 각자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by 이브런
IE003399454_STD.jpg ▲새해 떡국



세밑 전부터 아내는 장 볼 리스트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만두, 떡국, 잡채, 굴, 소고기, 계란 등이 적혀있다. 수산시장 가는 일정도 있다.



아내는 음식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새해 첫날 아이들이 집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떡국만 먹자고 했지만 아내는 속 모르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 아내는 애들이 오면 떡국 말고도 무언가 집어 먹을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이 아니라면 자기도 외식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아내는 결혼한 자식이 부부와 함께 집에 오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음식 가짓수는 적더라도 사 먹는 음식과 다르게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그런 아내를 나는 눈치껏 도울뿐이다.



나는 집 청소를 맡았다. 화장실부터 닦았다. 이리저리 흩어진 물건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정리했다. 이런 작업은 애들이 오면 우리가 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그러나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는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이어 아내의 심부름이 떨어진다. 아내 곁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손발이 되어야 한다. 맛과 간을 보고 추임새도 넣으며 격려하는 것이 주임무다.



IE003399452_STD.jpg ▲아내를 도와 굴전과 소고기육전을 부쳤다



나는 아내가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다. 먼저 가족들이 새해 새 희망을 갖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애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살아있을 때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소중했다는 걸 심어주는 것이다.



드디어 오늘 새해 아침에 애들이 집에 왔다. 새해 처음 맞는 조반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러한 뜻이 있어 아내가 준비를 서두르고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애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주방에 놓인 음식을 식탁으로 옮기고 식사를 차리는데 앞장섰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도 했다. 이 또한 새로운 모습이다.



나는 식사 후 애들과 차를 마시면서 새해 덕담으로 올해는 이중과세를 지양하자고 제안했다. 새해 첫날 집에 왔으니 설 연휴는 따로 지내지 않겠다는 얘기다.



내가 투병하는 상황도 감안했지만 이제는 명절에 아이들에게 집에 인사 오는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애들이 결혼 후 집에 오가는 횟수도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부모에게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기 바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또한 결혼한 애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IE003399453_STD.jpg ▲새해 첫날 아침 소박한 음식을 준비했다.



새해는 결혼한 아이들이나 우리들이나 서로 자기 삶에 충실하는 이기적인 삶을 추구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는 걸 시험해 보자는 것이다.



사실 결혼한 아이가 새해를 맞아 인사 온다니 막을 수 없었다. 반갑지만 내심 초하루는 피차 형식에 매이지 않고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막상 얼굴을 보면 할 말이 딱히 없다. 평소 사는 모습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애들의 표정만으로 삶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자식들은 나이 먹은 우리와 다르다. 결혼하면 예전 살던 집이라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가야 할 곳도 많고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2시가 다 될 무렵 몇 가지 음식을 챙겨주고 떠밀 듯 애들을 돌려보냈다. 썰렁했지만 우리 집은 예전 그대로의 평온을 되찾았다.



나는 헤어지면서 애들에게 올해 바쁘더라도 둘이 달리기 운동은 계속하라고 당부했다. 마음속으론 "우리 모두 사랑하고 행복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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