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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Nov 23. 2023

'부부싸움'과 '북어국물'

아내의 쾌유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어찌 이럴 수 있어?" "살려 놓으니까 이제 나몰라 해?"

"......."

"아버님과 둘이 잘해봐!""나는 나대로 살 테니까"

"......."     

며칠 전 아내는 악에 받친 듯 내게 분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아버지만 챙기고 자신을 외면하는 것에 그간 쌓인 불만을 쏟아냈다. 아내는 "마음대로 해보라"는 내 말에 그만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이처럼 분노에 이지러진 아내 얼굴은 처음 봤다.     

 

부부싸움의 발단     


아내는 지난 5월 담낭 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병원을 자주 다니고 있다. 별반 차도가 없어 초조하고 답답해 짜증과 불만이 늘었다. 그런 와중에 며칠 전 아버지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갔다.    

 

다행히 아버지는 위기를 넘기고 다음날 퇴원했지만 아내는 집에 몸져누워 있었다. 평소 같으면 수고했다며 나를 반겼을 터.    

  

아내는 후유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CT와 초음파 등 여러 검사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연로한 아버지를 보살펴야 한다는 핑계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검사하는데 아내 혼자 보내곤 했다.     


퇴원한 아버지가 귀가하는 날, 공교롭게 아내도 이날 검사받고 집에 있었다. 아내 표정으로 미루어 검사결과가 좋지 않은 것을 직감했지만 나는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내의 절규는 자신의 검사결과를 묻지 않는 내가 괘씸하고 미운 가운데 폭발한 것이다.   

  

요컨대 언제나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아버지에 두니 자신은 유령처럼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남편이 나 몰라라 할 때 느끼는 배신감을 생각하면 아내가 섭섭하고 화를 내는 것도 수긍이 간다. 

   

가뜩이나 아내는 지난해 초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아내는 교통사고와 수술 이전까지 갱년기를 보내면서도 그런대로 건강했다. 문제는 아내가 조금만 먹어도 설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수술 후유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헬슥해진 아내 얼굴이 안쓰럽다. 굽어진 허리엔 복대까지 찼다. 아내는 살이 쪘으면 소원이 없다고 한다. 뱃살을 조금 떼서 자기에게 달라고 할 정도다. 살찐다고 멀리하던 두부도 챙기고 있다. 급기야 스스로 영양제를 맞았다. 아내 말대로 약 한 알로 설사가 멈추고 벌떡 일어났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암으로 20년을 버티고 지금 살아 있는 건 순전히 아내 돌봄 덕이다. 아내가 곁에서 지켜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됐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내가 병든 자신을 모른 척하니 배은망덕하다 여기는 건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내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프면 아내가 간병하지만 아내가 아프면 남편은 소용없다"며 흐느꼈다. 이 말에 나도 눈물을 훔쳤다.  

   

아내의 쾌유를 빌며     


우리 부부는 고령의 아버지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입원할 때마다 나는 간병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삼시세끼 아버지 식사를 챙기고 시중들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내가 병으로 쓰러지고 보니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매사 아내 손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뒤늦게 아내의 수고로움을 깨닫는 중이다.   

 

아내의 고통이 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자책하기도 한다. 부부간 가까울수록 서로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명언이다. 무심코 아내에게 툭 던진 한마디가 마음의 상처를 준 것 같아 죄인 된 기분이다.   

   

자식들은 각자 둥지를 찾아가고 아내와 아버지, 그리고 나 셋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몸과 맘이 힘들면 외로움과 상실감이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다. 


하미만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언제나 무조건 아내 편이라는 것만은 아내가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간 표현하지 못해 섭섭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내 얼굴을 살펴본다. 어제보다는 좀 표정이 밝아 보인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다. 아내가 먹을 음식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다.


기력을 회복하는데 ' 북어국물'이 좋다고 해 몇 시간째 끓이고 있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따뜻한 국물을 맛있게 먹으며 활짝 웃는 아내를 상상했다.  

    

아내가 하루속히 쾌유하길 소망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귀에 들리는 노사연의 '바램' 가사가 오늘따라 구성지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에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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