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homes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하여
이직을 꿈꾸는 삶이 현재 진행 중이다. 오후 7시, 피로에 절어져 있는 몸을 힘겹게 집 한구석에 던져 놓으면 새로운 과업이 하나 생겨난다. 이직 준비를 위한 기본적인 자격증을 따는 것, 신용분석사라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오후 8시 공부를 시작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자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문과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용이 재미있달까 나. 왜 어른들이 공부할 때가 좋은 거다라고 말하는지 지금 몸소 느끼는 중이다. 사실, 나는 공부 체질이었던 것이 아닐까. 대학원에 가야 하나..?
아무튼, 매우 자본주의에 입각해있는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자니, 요즘 모든 것들이 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경제뉴스에서 별다른 차이 없이 봤던 단어들이 각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경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지점으로 모여들게 되는데, 그것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목표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즉, 최소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이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대원칙이라는 것이다.
껌 하나를 팔 때에도, 자동차를 팔 때에도, 집을 팔 때에도, 최대한 싸게 사서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덕이다. 이때 주고받는 돈에는 온도가 없다.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매개체만이 오고 간다. 오늘날에는 실물화폐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1과 0이 만들어내는 데이터가 대신에 움직이니 이곳에는 감정이 들어갈 여지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미덕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다른 누군가의 자본을 갈취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3억 주고 산 집을 5억에 판다. 나는 무엇 때문에 2억이라는 돈을 더 받게 되는 것일까.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인해, '라스트 홈'이라는 영화가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다.
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전 세계를 덮친 이후, 대출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집을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싼' 값에 취득하여 '비싸'게 되파는 한 중개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이 공인중개사 릭 카버(마이클 섀넌)에게 집을 빼앗긴 여러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데니스 내쉬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것은 그는 그의 집을 빼앗았던 릭 카버의 밑으로 들어가서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며 돈을 벌었다. 이 과정 속에서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집을 빼앗는 일을 하며, 심지어는 이웃의 집까지 빼앗아가며 그의 집을 되찾기 위해 돈을 벌었다.
누구나 알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화들은 유한하다. 무한한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마저 인간에게는 유한한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 '유한함'은 자본주의를 이루는 중심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유한하기 때문에 돈은 힘을 지니게 되고, 돈이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갈망하게 된다. 이 갈증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평생 가는 고통이 될 것이다. 이 고통을 내쉬는 집을 잃음으로써 크게 느꼈고,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릭 카버에게서 일을 시작했다. 문제는 릭 카버는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타인의 목마름을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99 homes'이다. 자신의 1 home을 위해 타인의 99 homes를 빼앗고 갈취해야 하는 존재, 사실 릭 카버는 한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다. 유한한 재화를 통해 최소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보편원리를 실행하는 인간이니 말이다.
나에게 이 영화가 불편하게 다가왔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릭 카버의 모습이 그리 나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 오히려 릭 카버가 매우 똑똑하며 시스템을 잘 이용하여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군림하는 그 모습이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데니스 내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내 인생에는 저런 멘토가 없을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이 씁쓸할 정도로 말이다. 모쪼록, 이 영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관된 다른 영화 마진콜, 빅쇼트를 보고 나서 관람한다면 사태를 일으킨 자들, 그 사태에서 기회를 찾은 자들, 그리고 절망 속에 헤엄치는 자들을 순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사회구조 속의 가장 아래 계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