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After a storm comes a calm

part 1. <이번 내리실 곳은 '동유럽'입니다.>

by 작은누룽지

어느새 2시가 되어 정비소에 다시 찾아갔다. 이미 블레드 성을 지나 케이블카를 타고 보겔산을 둘러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대신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먹었고 신기한 펌킨라떼를 마셨다. 나름 등가교환 성립이 되는가 싶었다. 경험이라면 경험일 터. 정비소로 돌아와 끝마친 차량 정비와 안내를 받고 계산을 한 후,


직원의 ‘Bad day’의 한마디에 무엇인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달했던 오늘 그친 비와 함께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오랜만에 탄 차가 반가웠다. 동생과 엄마는 다행히 잘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지만 늦은 대로 일정을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길들과 깊은 산세 조그마한 마을을 띄고 보이는 호수 위의 성이 이곳이 관광 맛집임을 알려주었다.


높은 성 근처에서는 쉽게 보여주지 않겠다며 엄청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렇게 불던 바람이 성내에서는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와 그 위에 홀로 떠 있는 방랑자가 된 블레드 섬이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살며시 나오며 오묘한 분위기를 뽐냈다.


물결의 변화가 없이 잔잔한 호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죽이며 바라보게 했다. 보고만 있어도 사계절의 파노라마가 지나가는 듯했다. 시원한 햇빛을 받아 떠다니는 보트가 생각나는가 하면, 떨어지는 낙엽이 호수 근처에 깔리는 모습, 눈이 내려 소복히 쌓여 블레드 섬에 내려앉은 그림들이 그려졌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호수를 따라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보겔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보고 싶었다. 깊은 산골짜기까지 이어지던 호수가 끊어질 때쯤, 보겔산 케이블카 앞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마감을 한 후여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만날 날이 있겠지.


굽이지는 길과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다시 보이며 호수 위의 블레드 성이 밤을 맞이해 달을 대신하여 주변을 밝혔다. 그 모습은 차들의 등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등대를 벗 삼아 다시 류블랴냐로 돌아왔다. 어제와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늠름한 용이 서 있는 용의 다리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듯했고 차들은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이런 매너 속에 우리도 한 발 더 양보 조금 더 천천히 차를 몰아 숙소 앞에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차를 했다. 저녁은 숙소에서 한국인이라면 빠질 수 없는 밥과 찌개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리고 아쉬운 케이블카를 달래기 위해 류블랴냐 성에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류블랴냐 성의 리프트 앞에서는 관광객들의 호구조사를 하는 듯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는 답변에 격한 반응과 직원들끼리 내기를 했는지 슬로베니아어로 ‘이거 봐 한국인 맞지?’ 하는 눈치였다.


리프트를 타고 천천히 류블랴냐 성으로 올라갔다. 야경을 보러 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럴만했다. 시내의 야경은 조용하고 다양한 색채의 건물이 검은색으로 뒤덮이니 매력이 사라지고 단일의 조명들이 아담하고 평범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야경의 뒤에서 성의 시계가 큰 괘종시계가 빛나는 것이 어두운 이곳에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날씨가 맑은 아침에 올 사람들이 훨씬 많을 듯했다. 그래도 생각할 여지는 충분했다. 오늘의 힘들었던 여정이 마지막은 고요했으니 그걸로 됐다. 잠잠한 슬로베니아의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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