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중노릇 하는 까닭

정약욕, 동림사 독서기 中

by 글로


오성현(전남 화순의 옛 이름)에서 북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만연사라는 절이 있다. 만연사 동쪽에는 조용하게 도를 닦는 암자가 있다. 불교 경전을 설법하는 스님이 그곳에 사는데, 동림사라고 부른다. 아버님이 오성현의 현령으로 부임한 다음해 겨울에 둘째 형님(정약전)과 함께 동림사에 머물었다. 당시 둘째 형님은 '상서'를 읽고, 나는 '맹자'를 읽었다.


처음 동림사에 올 때는 첫눈이 가루처럼 땅에 뿌리고, 산골은 얼어붙으려는 듯했다. 산의 나무들과 대나무의 빛깔도 모두 추워 움츠리는 듯 새파랬다. 그 때문인지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오면 정신이 맑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곧바로 시냇물로 달려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밥 먹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여러 스님들과 줄을 지어 앉아 식사를 했다.


날이 저물고 별이 보이기 시작하면 언덕에 올라가 휘파람을 불며 시를 읊조렸다. 밤이 되면 스님들이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읊고 불경 외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책을 읽곤 했다.


이런 생활을 40여일 동안 하고 난 다음, 나는 둘째 형님에게 "중이 중노릇 하는 까닭을 여기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대체로 부모형제나 처자식과 누리는 즐거움이 없고, 술 마시고 고기 먹거나 여자의 교태 소리와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는데,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중노릇을 한단 말입니까? 진실로 그것과는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가 독서를 하고 학문을 닦은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일찍이 동림사에서 맛본 것 과 같은 즐거움이 있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둘째 형님은 "맞다. 그것이야말로 중이 중노릇을 하는 까닭일 것이다"고 말했다.


-정약용 '다산시문집 : 동림사 독서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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