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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Oct 25. 2023

작은 새

01

3년 전 )


구름 없는 하늘엔 바람도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지만, 거리의 가로수처럼 우두커니 서있 남자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보였던 것 같다. 노란색 킥보드 위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던 아이는, 들떠버린 보도블록 위를 지나다가 킥보드와 함께 넘어졌다. 쓸린 무릎이 아팠을 텐데, 아이는 울지 않고, 벌떡 일어나 다시 킥보드에 오르려 하자, 남자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프지 않니?"


아이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예쁘구나. 너 혼자야? 엄마는 어디 갔어?"

"옆집 이모한테"

"혼자서도 아주 씩씩하네. 너 이름이 뭐야?"

"......"


아이가 낯을 가리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공룡 열쇠고리를 꺼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어! 트리케라톱스다. 백악기 초식공룡인데..."

"와! 너 공룡박사구나. 이거 가질래?"

"......"

"괜찮아 가져, 나는 집에 많이 있어."

"고맙습니다."

"너 이름이 뭐야?"

"민서요"

"민서! 이름도 멋진데. 민서야, 우리 공룡 보러 갈까?"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바닥에 다리를 굽히고 앉아, 괴롭고 지친 얼굴로 통화하고 있었다.


"2일이 지났어요. 제발 아이를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여자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통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남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남자에게 물었다.


"좀 알아봤어?"

"아직 특별한 게 없나 봐."

"자기, 경찰에 아는 사람 많잖아. 제발 어떻게 좀 해봐!"

"조사 중이잖아, 좀 진정하고 기다려보자. 뭔가 찾게 되면 바로 알려주기로 했어."


남자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렸다. 평소라면 진동으로 되어 있어서 못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아들을 잃어버린 뒤로 전화기 설정이 바뀌었.


[서 태우 님이시죠? 민서 군 실종사건 담당 우 지만 형사입니다. 지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CCTV 녹화영상을 보고 있는데, 영상 속 아이가 민서 군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해서요.]

"네, 그럼 저희가 관리사무소로 지금 가겠습니다."


영상 속 아이는 민서가 확실했다. 아이의 엄마는 한눈에 민서를 알아봤고, 노란색 킥보드를 타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눈이 부어 보이는 형사가 말했다.


"아이가 부모님 연락처를 알고 있다거나, 집주소를 알고 있나요?"

"네, 그럼요. 우리 번호를 모두 알고 있고, 집주소도 외우고 있어요. 실종접수할 때 다 말씀드렸어요."

"혹시, 아이가 유괴된 것은 아닐까요?"

"유괴요?"

"유괴되었다면 범인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오기 마련인데, 따로 연락받으신 거 있으세요?"

"아니요. 저희는 연락받은 거 없습니다. 유괴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 그러셨군요. 그럼, 주변에 원한 살만한 사람은 없으셨나요?"

"그런 거 없습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 말에 따르면, 아이가 실종된 집은 이웃들과 분쟁이나 주차, 층간 소음 관련 민원조차 없었던 집이라고 했다. 민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도 아이가 밝고 구김이 없었다고 하는 걸로 봐선, 가정환경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였다.

우형사는 CCTV 관제센터로 향했다. 현재로선 CCTV를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인데, 녹화영상을 열람하기 시작한 우형사는, 오래 지나지 않아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아이에게 접촉하는 영상을 찾게 된다.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아이를 데려가는 남자를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CCTV 사각지대 때문에 용의자 동선 파악에 어려움이 생겼다. 수사팀은 남자가 아이를 데려간 당일, 인근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을 파악하고 차주의 협조를 받아 블랙박스 녹화영상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블랙박스 녹화영상 분석작업에서 민서의 최종 행선지를 알아낸 경찰이, 의심될만한 장소 인근을 수색하다가 인적이 없는 포장도로 끝에서 민서의 노란색 킥보드를 찾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오래된 변전소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시설은 시건장치로 문이 굳게 잠긴 상태였지만, 뒤쪽으로 철망이 잘린 흔적이 있었. 기둥 가장자리 쪽으로 도구를 사용해 정교하게 잘랐는데, 손으로 벌리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 우형사는 기계시설이 보이는 복도를 지나,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멈춰 섰다. 자신의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 든 우형사가 약실에 실탄이 있는 걸 확인한 후, 2층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 문 앞에 다가선 우형사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문을 연 우형사가 총을 앞세워 사무실 안을 빠르게 살펴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긴장감이 풀려서일까? 테이블 위에 보란 듯 올려진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형사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줄무늬 긴팔티와 무릎 나온 파란색 바지, 뽀로로 양말과 희고 작은 아동화, 하늘색 헬멧 그리고 속옷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더 기괴했던 것은,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신체일부가 투명비닐 팩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유괴사건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이라서 경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돈을 목적으로 아동을 유괴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살인이나 상해를 의도한 것 같, 그럴 만도 한 것, 아이의 부모가 범인으로부터 협박거나, 돈을 요구당한 적이 없었 때문이다.

변전소 입구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이, 더욱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녹화 영상에서 용의자와 민서가 변전소 안으로 함께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용의자 혼자였기 때문이다. 변전소 어딘가에 민서가 있어야 했는데, 그 어디에서도 아이는 없었, 현장에서 아이의 안구를 적출했다면 혈흔이라도 있어야 했지만, 혈흔발견되지 않았. 경찰은 강력사건 전담인력으로 민서사건 수사팀을 새롭게 구성하기에 이른다.

현장 감식 과정에서 수거한 증거물 중에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안구는 국과수 본원에서 검사가 진행되었다. 아이의 부모가 국과수에 내원한 상태였고, 그들에게서 DNA시료를 채취한 분석팀이 사건현장에 있던 증거물과 DNA 분석작업을 다. 

검사 결과는 혈연관계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안구민서의 신체라는 것을 알게 된 태우는 복받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왈칵 눈물 쏟아졌다. 손가락에 가시 하나박혀도 가슴 아픈 내 새끼인데, 뽑힌 눈알이라니,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아 미칠 듯이 괴로웠지만, 옆에서 울부짖는 아내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태우는 자신의 감정억누르고 있었다. 

대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부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서, 고통의 흔적을 남겨 부모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다니 악마가 따로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악마에게라도 빌고 싶었을 것이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어줄 테니, 아이만은 살려서 내게 돌려달라고.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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