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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잘못하면 어떻게 책임을 질까?

- 윤진원이 100원 소송을 제기한 이유(소수의견)

by 로도스로

○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

강제철거 현장에서 농성을 하던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는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형사소송에서 박재호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 윤진원(윤계상)는 박재호를 만나러 구치소에 갑니다. 박재호는 경찰만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도 죽었고 아들을 죽인 건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주장합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였지만 사건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면서 진원은 박재호의 말을 믿기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이 사건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신문기자 수경(김옥빈)도 한 몫을 하죠. 하지만 상황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박재호 아들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경찰이 재판을 받지만 검찰은 무죄를 구형합니다.

대응책을 고심하던 진원은 선배인 변호사 대석(유해진)에게 국가배상 소송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혼전문 변호사로 돈 안되는 사건은 맡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는 대석이지만, 고심 끝에 진원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그리하여 손해배상액 100원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이 시작됩니다.

- 소수의견


국가를 피고로 삼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는 두 가지 경우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건 보통의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잘못한 일에 대해 금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걸(달리 말하면 손해배상을 하는 걸) 국가배상이라 부릅니다. 손해배상과 구별되는 개념으로는 손실보상이 있습니다. 위법한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을 때 하는 게 손해배상인 반면, 손실보상은 적법한 행위를 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야기해서 그 피해를 보전해 주는 겁니다. 정부청사 건설과 같이 공공적인 일을 하기 위하여 국민 개인의 땅을 강제로 사면서 일정한 보상을 해주는 토지수용이 손실보상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이루어진 관념적인 존재로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진 건 아닙니다. 그런 국가가 어떻게 위법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국가의 행정작용은 공무원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무원이 한 행동을 국가가 한 행동으로 봅니다.

공무원의 행동이기만 하면 국가가 무조건 책임지는 건 아닙니다. 우선 공무원의 행위는 공적인 직무여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공무원이 휴일에 지인들과 술 먹고 길을 걷다가 기물을 파손하였더라도 이는 직무집행과 무관하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의 행위는 위법해야 합니다. 법률에서 정해놓은 방식과 다르게 공무를 수행하거나 법률에서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정해 놓았는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당연한 위법합니다. 하지만 국가배상에서 말하는 위법은 ‘법률 위반’보다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공무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예를 들면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을 위반하여도 위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무원의 위법한 행위와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공무원의 행위 때문에 손해가 발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과관계가 필요한 이유는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졌다고 까마귀에게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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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영조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입니다. 영조물이란 공공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이나 설비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영조물에는 도로, 하천 등이 있습니다(이하에서는 편의상 ‘시설물’이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집중호우로 산비탈이 무너지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났다면, 교통사고의 피해자는 도로를 관리하는 국가나 지자체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공무원의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시설물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의 가장 차이점은 바로 무과실인 경우에 책임을 지는지의 여부입니다. 공무원의 위법행위 때문에 손해가 발생하려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으려면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어야 합니다. 이에 반해 시설물 하자로 인한 책임은 공무원에게 과실이 없더라도 결과적으로 시설물의 설치나 관리상에 하자가 존재한다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치나 관리상의 하자란 무엇일까요? 판례는 시설물이 그 용도에 맞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안전성이 결여되면 하자가 있다고 봅니다. 실제 있었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A비행장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항상 소음에 시달려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공군 훈련기가 동계기간 1일 평균 비행횟수는 약 64회, 춘계기간 1일 평균 비행횟수는 약 73회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만성적인 불안감, 집중력 저하, 잦은 신경질 등의 정신적인 고통을 입게 되고, 전화통화방해, TV·라디오 시청장애, 독서방해나 사고중단, 수면방해 등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데에 많은 지장을 겪게 되었습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대법원 2010. 11. 25. 선고 2007다74560 판결). 비행장은 비행기의 운행으로 인해 소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지만, 소음의 정도가 주변 사람들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경우(구체적으로는 소음도 85WECPNL 이상인 경우)에는 그 비행장에 하자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 몇 가지 쟁점들

공무원의 위법한 행동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할까요? 국가배상청구소송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국가 즉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송을 이기고 나서도 피고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한민국이 돈을 지급하지 못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아닌 가해행위를 한 공무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을까요?

판례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일어나게 된 과정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해서 위법한 행위가 일어난 때에는 공무원 개인도 손해배상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경과실의 경우에는 국가가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공무원 개인이 국민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고의로(일부러) 위법행위를 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 실수로 위법한 행위가 일어나는 것일 텐데, 과실의 정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따져보아 사건별로 달리 판단해야 하겠지만, 대법원은 중과실의 의미를 “공무원이 약간의 주의만 한다면 손쉽게 위법한 결과가 발생할 거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여서 고의 고의와 가까운 정도”라는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판결_pixabay.jpg <출처: pixabay>

민법에는 소멸시효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권리의 행사를 할 수 없도록 하여 법적인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소멸시효가 적용되어, 위법한 행위를 한 날로부터 3년 혹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안 날 기준 3년과 발생일 기준 10년 모두 모두 지나야 하는 것은 아니고, 둘 중 하나만 지나도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합니다(즉 위법한 행위가 4년 전에 발생하였고 그 사실을 바로 알았다면 발생일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더라도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소멸시효는 법적인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이지만, 남용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양날의 검입니다. 특히 국가가 국민에게 잘못을 저지른 뒤에 시간이 지났으니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는 건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정의에 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소멸시효의 예외를 인정하여 오래 전 일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과거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당한 후 간첩방조 등의 범죄사실로 유죄판결을 받고 형집행을 당한 사람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되었다며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하지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여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예외이므로 과거의 일에 대해 무조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실제 사례

영화 “소수의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2009년에 발생한 용산참사입니다. 용산참사의 철거민 세 명이 실제로 이 사건과 국가배상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철거민 A, B, C(이하 ‘철거민들’)는 2009. 1. 19. 서울 용산구에 있는 건물에 망루를 짓고 점거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때 화염병을 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한편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시위진압에 관한 경찰관들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이로 인하여 경찰특공대원 1명을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등으로 공소가 제기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철거민들의 변호인은 형사소송에 검찰의 서류의 열람 및 복사를 신청하였으나, 검찰은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변호인은 서류의 열람·복사를 허용하도록 할 것을 신청하자 법원은 변호인의 서류 열람·복사를 허용할 것을 명하는 결정을 하였지만 검찰은 끝내 거부하였습니다.


철거민들은 검찰이 서류의 열람·복사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객관의무에 위반되며, 법원의 소송지휘권을 침해하고, 소송에서의 입증을 방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대한민국이 원고 3명에게 각 3,000,000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9. 28. 선고 2010가단6774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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