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지 않는 사람에게 나임을 증명하는 일
2003년 1집 앨범 “Map Of The Human Soul”으로 데뷔한 에픽하이는 타블로(리더, 랩, 보컬), 미쓰라(랩, 보컬), 투컷(DJ)의 3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규 1집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해 정규 2집이 발매된 후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에픽하이라는 팀을 알리는 데에는 타블로(본명: 이선웅)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의 학력에서 비롯된 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교 영문학과 창작문예학 전공 학사, 영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은 학력으로 인해 타블로는 ‘엄친아’ 이미지를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학력 때문에 타블로는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의 학력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10년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하 '타진요')라는 온라인 모임이 신설되기까지 하였고, '타진요'는 회원이 20만 명에 달했습니다.
스탠포드를 졸업하게 맞다고 말하는 타블로, 거짓학력으로 대중을 속인다고 주장하는 타진요!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타블로에게 끈질기게 소위 ‘진실’을 요구하던 일부(9명) 타진요 회원들에 대한 판결을 통해서, 타블로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명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해당 카페는 타블로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학력을 위조하여 마치 스탠포드를 졸업한 것처럼 행세한다고 주장하며 타블로를 비방하기 위해서 개설되었습니다.
타진요 회원 중에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은 사람은 총 9명(이하 ‘피고인들’)인데, 피고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아래의 내용은 실제 사실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타블로의 학력은 모두 허위이고 타블로는 스탠포드 대학에도 간 적이 없다. 타블로가 제시한 성적증명서, 졸업 사진과 같은 자료는 타블로가 위조하였거나 합성하여 제출한 것이다. 타블로는 실제 스탠포드를 졸업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 타블로의 가족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서 10년 간 학력, 경력을 속여 사기를 쳐 온 사기꾼 집단이다. 언론에서 공개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공문은 모두 가짜이고, 타블로가 언론사 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기사를 쓰게 하였다.
이 정도만 해도 타블로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충분한 수준인데, 피고인들은 타블로와 그 가족들을 향해 “그 애비에 그 자식”, “돌대가리”, “과대망상환자”와 같이 원색적인 모욕까지 퍼부었습니다.
검찰이 피고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아 기소하였는데 이때 적용한 법률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정보통신망법)”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형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명예훼손 행위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온라인에서의 명예훼손 행위는 쉽게 전파되고 오랫동안 남아 있어 피해자에게 끼치는 피해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피고인들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허위 사실이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법원은 피고인들이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타블로는 1988년 8월 경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1992년 11월 13일 캐나다 국적을 취득하였습니다. 1994년에 국내에 입국하여 ○○학교를 졸업하였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98년 9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하여 2001년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coterminal 과정을 통해 2002년 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법원이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졸업한 게 맞다고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증거들이 일관되게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탠포드 대학교는 타블로의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를 직접 송부하여 타블로의 스탠포드 졸업사실을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타블로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했다고 피고인들은 주장했지만, 스탠포드 대학이 보내 준 타블로의 입학서류에 따르면 입학서류에 기재된 생년월일, 가족들의 이름, 직업, 학력 등의 정보는 타블로의 정보와 일치한 걸로 보아 도용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타블로가 제시한 성적증명서는 스탠포드 대학의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되었으며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 역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이 위조나 변조한 서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NSC(미국 국립 학생정보 처리기관), ETS(미국 교육평가원)의 확인, 타블로 지도교수의 확인 등 타블로의 학력이 진짜라는 증거는 충분하였습니다.
타블로는 자신이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충분히 제시했지만, 피고인들은 숱한 증거들은 외면한 채 구체적이고 정확한 근거도 없이 “모든 자료가 위조되어 믿을 수 없다”며 타블로에 대한 비방을 계속하였습니다. 즉 피고인들은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거짓 사실을 주장하며 타블로의 명예를 훼손하였기에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 겁니다.
9명 중 대부분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건 범행의 동기가 불순하고 잘못된 범행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며 범행 방법도 천박하여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국정농단 사태의 전말이 대체로 드러난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번갈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블릿 PC도 조작이고, 언론은 거짓보도만 하고 있으며, 검찰은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 단정하는 맹목(盲目)의 위험함입니다.
피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진실’이라는 확신에 찬 나머지 객관적인 증거들에는 눈을 돌리고 보고 싶은 대로만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타블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법원은 말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7. 6. 선고 2011고단146판결).
“내가 나의 학력이나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일견 매우 쉬운 것으로 생각되나, 누군가가 내가 내어 놓은 모든 증거들을 일방적으로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결국 어떤 증거를 보여도 믿게 할 수 없고,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조차 불가능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