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er에 새겨진 겹겹의 시간들 / 제비꼬리고사리

(56화) 포자낭을 닮은 추억의 타임캡슐

by 로데우스

꽃의 존재가 이야기가 되고
겹겹의 시간이 추억의 얼굴
포자낭처럼 알알이 박힌 타임갭슐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s4AuOV68qJcUsaJ6Cp7SS4aM8E%3D 원앙새와 제비꼬리고사리


원앙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제비꼬리고사리가 군락을 이뤘다. 원앙새도 제비꼬리고사리도 천국이 따로 없다.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사는 세상이 더없이 아름답다. 원앙금침에서 신혼부부가 행복한 첫날밤을 보낸 후 신랑의 머리숱이 제비꼬리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 짓는다. 닿을 수 없는 물 건너 풍경을 감상하는 꽃객의 마음은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은 무엇인가? 굽이굽이 펼쳐진 삶의 파고 속에 겹겹의 사건들이 촘촘히 박혀 언뜻언뜻 보여주는 잔상을 따라가는 시니어의 희미한 눈은 흔들리는 미소를 보면서 어렴풋한 시간 속으로 풍덩 빠지는 모습이 소설의 한 구절이다. 한 구절 한 구절 파로나마 속에 아내의 빨간 옷이 유난히 반짝인다. 젊디 젊었던 그 시절의 언덕은 꿈을 꾸듯 생생한데 지금은 서리처럼 허연 머리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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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꼬리고사리 전초(좌), 축소된 우편의 흔적이 알을 품고 있는 제비꼬리를 닮았다.


오름의 수직동굴에서 제비꼬리고사리를 처음 보고, 한라산 계곡에서 설경의 제비꼬리고사리도 보았다. 늘씬하고 시원한 자태를 지녔다. 하부의 우편은 점차 축소되어 흔적만 남는다. 그 축소된 모습에서 제비꼬리를 연상한다. 이 겨울에 거제에는 이미 춘당매(春堂梅)가 피었는데 통영의 시간은 춥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을 기다린다. 제비가 째잭거리던 시골의 모습은 50년 전의 풍경이다. 세월은 흘러 아내와 함께한 중국 남부여행에서 많은 제비들이 산다는 옌즈동(燕子洞)을 둘러본 것도 8년 전이다.

엔즈동은 특이하게 강물이 동굴을 통과하고 동굴 안에 댐을 세워 뱃길을 만들었다. 동굴 입구 300m 안에 수백만 마리의 제비들이 사는데, 8월에 말레이시아로 날아간 후에 제비집을 채취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강물이 흐르는 동굴 속 절벽의 종유석 속에서 제비집 채취 시연을 하는 젊은이는 원앙금침의 시간을 보냈을까? 제비집 요리는 중국 최고 요리 중의 하나이다. 제비집에서 제비의 털만 골라 요리하며, 제비집 한 개에서 나오는 털은 5g 정도란다. 그 당시 1g의 가격은 68元이었다. 강남 갔다던 제비는 강남보다 더 먼 곳을 날아갔다 오는 것 같다. 제비의 털은 하늘을 날 때의 옷이다. 그 견고함과 보드라움을 맛으로 승부하는 중국인이 무섭다.

제비집 동굴을 본 후 줸수이(建水)의 밤은 특별했다. 숙소 주인 개인 거실은 퇴직한 아버지를 위해 자식들이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숙소 주인의 전통차를 따르는 모습에서 겹겹의 시간들이 보였다. 퇴직 후의 흐뭇한 얼굴은 나는 가졌을까?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흐뭇한 시간을 보낸 것은 제주살이 초기의 나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통영의 시간에 양치식물을 생각한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cHgjeP7Gq02bWMlTfhaPTwBTYlA%3D 제비꼬리고사리 새순 / 새순에 통기공이 확실하게 보인다.


제비꼬리고사리는 중축과 우축이 만나는 곳 뒤쪽에 혹모양의 통기공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기공(通氣孔)은 상황에 따라 개폐되어 산소 및 탄산가스의 교환과 식물의 체내 수분의 이동을 조절한다. 통기공은 식물의 환경 조건에 적합한 기공의 수나 밀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제비꼬리고사리의 통기공은 유난히 커서 제비꼬리고사리의 서식처를 대변하는 것 같다. 제비꼬리고사리는 제주도의 낮은 지대 계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희귀 양치식물이다.

식물의 통기공은 어쩌면 험난한 삶 속에 찾은 나의 취미의 다른 말이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대상인 꽃을 찾아 은퇴 후 지방살이로 이어졌다. 통영살이 하면서는 통도사 버섯탐사팀에 닿았고, 그 인연으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성파큰스님 등의 현대옻칠예술 겹겹의 시간(Layer Upon Layer)을 관람했다. 옻칠의 과정, 작가의 옻칠 예술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겹겹이 쌓인 시간들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포토샵을 하면서 알게 된 Layer의 개념이 내 시간으로 들어와 나의 삶에 누적된 흔적을 한 장 한 장 들춰보는 마음 같았다.

제비꼬리고사리는 내 삶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기회였으며, 내 삶의 Layer가 되었다. 이 얼굴 저 얼굴, 이 시간 저 시간, 이 추억 저 추억, 굽이 굽이 아득한 세월은 Layer의 얇은 막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제비꼬리고사리의 포자낭처럼 추억의 타임캡슐들은 알알이 내 삶 속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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