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의 경쟁을 심판하다 / 애기석위

(57화) 솔로몬의 칼 대신 공평한 사랑을 택하다

by 로데우스

제주살이에서 헛물켠 애기석위

통영살이에서 복 터진 애기석위

석위 보다 진한 이미지가 되었다.


절벽에서 진주바위솔과 함께 사는 애기석위


제주에서 애기석위를 찾겠다며 보통의 석위 중 유독 작은 것을 붙들고 애기석위냐 묻던 시절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제주에는 애기석위가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애기석위는 '제주를 제외한 전역의 바위나 노목에 붙어 산다'라고 되어 있다. 양치식물 초보 시절, 그런 기초적인 사실도 모른 채 작은 석위만 보면 혹시나 하며 헛고생을 했던 셈이다.


애기석위는 잎과 잎자루에 별모양의 털(성상모)이 있고, 잎자루에 홈이 파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석위와 애기석위가 헷갈릴 때는 잎자루의 홈만 확인해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통영살이 하면서 곳곳에서 애기석위를 만났지만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풍경은 진주바위솔과 어우러져 절벽에 터를 잡은 애기석위였다. 망원렌즈로 깎아지른 절벽 위 진주바위솔을 찍다 뷰파인더를 확인하니 그 곁에 애기석위가 있었다. 작년에 보지 못했던 진주바위솔 특유의 붉은 잎을 찾아 올해 다시 그곳을 향했는데, 붉은 진주바위솔과 나란히 살아가는 애기석위의 모습은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왕버들 줄기에서 사는 애기석위


하지만 그것에 질세라 또 하나의 애기석위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두 아름을 넘을 법한 왕버들 고목에 몸을 기댄 녀석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왕버들이 있다니 놀랄 지경인데, 그 거구에 붙어사는 애기석위가 내게 하소연한다. "나도 그대의 뇌리에 박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공교롭게도 낮에 본 진주바위솔 버전이 '밝은 애기석위'라면, 저녁에 마주한 왕버들 버전은 조금 '칙칙한 애기석위"였다.


며칠 후 아내와 함께 함안의 무진정으로 풍경을 보러 갔다. 그때 그 왕버들 줄기를 팔 벌려 안으며 인증 사진도 찍고, 아내에게 애기석위 잎을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다시 보니 왕버들 고목의 애기석위도 저녁의 모습과 달리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왕버들 버전의 애기석위 또한 아내와의 추억과 함께 내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내 뇌리를 차지하려는 애기석위들의 경쟁 앞에서 나는 솔로몬의 판결을 떠올린다.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나누어 주라"하니, 진짜 어머니가 "아이를 죽이지 말고 저 여자에게 주라"며 울부짖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진주바위솔 곁의 녀석은 먼저 한 번 보았고, 왕버들 곁의 녀석은 나중에 두 번 보았으니, 선후와 회수 사이에서 공정함이 엇갈린다. 결국 나는 솔로몬의 칼 대신 공평한 사랑을 택하기로 했다. "둘 모두를 내 뇌리에 똑같이 박아주마."


애기석위 영양엽과 포자엽(좌), 애기석위 잎과 잎자루의 별모양의 털과 잎자루 홈(우)



애기석위가 6~13cm로 작고 가냘프다면, 석위는 20~40cm로 크고 늠름하다. 석위는 전남, 경남, 제주의 바위 또는 고목에 붙어 자란다. 애기석위보다 흔하게 보이며 대군락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석위의 추억은 콩짜개난과 함께하는 풍경에서 완성되었다. 고사리와 희귀 난초가 한 둥지에 뿌리를 내린 그 진귀한 풍경은 볼 때마다 경이로웠다. 야생화에 대한 이 아름다운 기억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


석위와 콩짜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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