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m의 존재, 0.1mm 생명 예찬 / 독립배우자체

(58화) 배우자체(n)로 수천 년을 버텨온 이단아

by 로데우스


1mm의 자연의 신비
배우자체(n)로 수천년을 살아남은 존재
독립배우자체에서 받는 위로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jBVw02WyEwwsQGzWlHRI6MoIZBA%3D 독립배우자체 모습(원본)


지난 1월, 아들이 맹장이 터졌다는 다급한 소식에 통영에서 인천으로 급히 길을 떠났다. 병실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문득 "결혼을 해야 진짜 독립일 텐데"라는 생각을 했고, 머릿속에는 양치식물 독립배우자체(independent gametophyte)가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1년 전에 블로그에 비공개로 저장했던 독립배우자체 글을 열었다. 199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립배우자체 정체가 알려졌고, 2014년 한국에서 좀고사리 독립배우자체가 발표되었다. 이 독립배우자체를 2024년 보았는데 1mm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디작은 존재에 관한 글이었다. 그러나 문장들은 마치 된장항아리 속 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자식이 얼른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에 생명력의 날개를 달아주기로 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ILal07c6mpw4JSeArzzl0RWt%2Fs%3D 독립배우자체 자생 환경 및 촬영 모습


내 다리에는 낙상사고로 부서진 뼈를 이은 차가운 철심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재활의 통증보다 간절했던 것은 제주 계곡 어딘가에 숨어 있을 독립배우자체의 실체였다. 화려한 잎(포자체 2n) 대신 1mm의 연약한 몸(배우자체 n)으로 수천 년을 버텨온 이단아. 그 신비의 모습을 보고싶은 나의 수많은 족적은 제주 계곡에서 재활과 1mm의 존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땅방울이었다.


철심을 뺀 다리로 다시 제주의 계곡을 찾은 어느 날, 근시의 안타까움으로 안경을 벗고 절벽에서 눈을 10cm 가까이 대며 살폈다. 어느 순간, 리본이끼 비슷한 엽상체와 그 가장자리에 붙은 무성아가 보였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찾았다!' 그 한마디로 5년 동안 독립배우자체를 찾으려했던 발길과 실망했던 순간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2%2BBL5yDtIHSYFLP%2BFWSNDSwBq%2BI%3D 독립배우자체 / 넓은 리본 같은 엽상체는 폭이 1mm, 그 끝의 실같은 무성아는 폭이 0.1mm


발견은 양치식물 마니아의 기적이었고, 증명은 카메라의 몫이다. 이제부터 0.1mm나 될까 말까하는 무성아를 어떻게 사진으로 담을까? 삼각대로 설치하고 접사링까지 붙인 카메라를 최단 초점거리를 유지하면서, 독립배우자체가 있는 절벽에 고정시켰다. 렌즈캡을 벽에 대고 미세한 흔들림 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은 독립배우자체를 엽접하는 나의 의례였다.


가슴의 두근거림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진이 남아야 내가 독립배우자체를 보았다는 증명이 된다. 뷰파인더를 확대하여 솜털 같은 생명의 돌기인 무성아에 초점을 맞추지만 너무 작아 희미하다. 찰칵! 확인, 찰칵! 확인... 어느 순간 뷰파인더의 사진을 확대하니 무성아가 보인다. 안도감과 감사함에 몸을 떨었다.


발견의 기적과 사진의 증명, 그것은 나의 재활과 끈기가 보여준 위대한 훈장이었다. 독립배우자체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홀로(n) 버티는 것이 진화의 퇴보가 아니라 위대한 승리라고 말이다. 그래 너에게 배우고 싶다. 피눈물나는 재활을 하더라도 보통의 다리로 회복되지 못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야 한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22907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sYaHfukHD2KweYQcLRYKk2%2Bnox8%3D 독립배우자체가 사는 환경


며칠 후 어느 오름을 오르다가 독립배우자체를 또 발견하고, 정상에 올라 바람과 습기가 전해주는 감상에 젖고 있었다. 그 때, 상념을 깨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발견했던 '큰고란초'가 드디어 양치식물 학계에서 "제주에 자생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어렵다는 양치식물에 도전해 나도 한 역할을 했구나!" 하는 뜨거운 감회가 터져 나왔다. 발 아래에 있는 독립배우자체도 어쩌면 나의 이 족적을 함께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1.jpg


이제 작년 2월 8일 기록한 독립배우자체의 글을 다듬어 세상이라는 하늘로 날려 보낸다. 2월 11일 생일을 맞는 아들이 다시 건강해지기를, 또 2월 11일 양치식물 이야기 연재 1주년이 되는 길을 자축하면서 말이다. 아들아,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더라도 네 안의 생명력은 결국 너만의 "꽃"을 피워낼 것이라 믿는다. 절벽에서떨어졌어도 살아남은 아빠는 진정 끌리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련다.



이전 27화아기들의 경쟁을 심판하다 / 애기석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