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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영 Jan 06. 2021

[영화 리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삶의 빈 공간이 아닌 채워진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드디어 봤다. 주인공 찬실이는 영화 pd로 일하며 영화에 빠져 살다시피 했지만 어느  준비하던 영화의 감독이 갑자기(정말 갑자기) 죽어버려 일자리를 잃고 산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일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다 돈도, 집도, 무엇하나 번듯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이 40살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찬실은  지난날 그렇게 일만 하며 살았을까 후회하고 번민한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우울한 영화라고 오해할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화의 시작부터 갑자기 감독이 죽어버리고, 끝도 없는 오르막에 위치한 찬실이네 산동네는 그저 우울하고, 찬실이가 처한 상황도 낙담 가득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찬실이란 캐릭터가 가진   명랑함이 영화를 감싸고 있어 보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그런 영화였다.

찬실에겐 당장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영화판 어디에서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아 친한 여배우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되는데  배우의 불어 과외선생님인 5 연하남 ‘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된다. 둘은 점차 가까워지게 되는데 둘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  크리스토퍼 놀란 좋아해요.
찬실 : 노올라아안??????

부산 출신인 찬실이는 영화 속에서 사투리를 쓰는데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가장 정감을 느끼게   굵직한 한마디의 대사, “노올라아안?????” 너무 웃겼다. ㅋㅋㅋ 어렵고 난해하고 대중들은 대부분 지루함을 느끼는 예술영화를 만들어왔고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찬실에게 자신은 이제 재미있는 영화가 좋다고, 크리스토퍼 놀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의 말은 너무나  충격이었나 보다.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내뱉는 “노올라아안????”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귓가에 지금도 계속 맴돈다... 노올라아안???ㅋㅋㅋ)

찬실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도  좋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힘들어하면서도 마냥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일단 몸을 움직이는 그녀의 활기참이 좋았다. 가사도우미 일을   씩씩하게 걸레질을 하는 모습, 가파른 산동네를 힘차게 오르내리는 모습, 추운 날씨에도  동네 공원을 산책하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거침없이 다가가는 모습까지.

 모든 찬실의 ‘움직임 찬실 본인이 그동안 삶을 통해 쌓아 온 단단한 뿌리에서 나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40 되도록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찬실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느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청춘을  바쳤던 찬실은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하는  맞는지를 고민한다.  질문은 사는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짜 원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요. 사는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안에 영화도 있어요.”

영화에 삶을 걸었지만 의도치 않게 주어진 쉼의 기회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안에 영화가 있음을 깨달은 찬실은 진짜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삶을 살기로 한다.

40살의 귀여움으로 무장한 명랑하고 따뜻한 ‘찬실 정말 복이 많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되는 영화,  삶의 빈 공간보다 채워진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의문투성이인 삶이라 괴로웠는데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갈 여정이  삶을  채워줄 것임을 믿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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