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당첨과 그 이후
투자목적으로 대출받아 집 샀다가 금리가 올라서 비명 지르는 중이라는 사람들 보면 애초에 왜 빚 까지 내서 투자를 했나 싶어 참 한심할 따름이지만 오래 거주할 목적으로 좋은 집 한 채를 마련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경험을 어린 시절 가지지 못한 나는 딱히 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어차피 인생은 늘 떠돌아다니며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으로 와 남자친구(지금 남편)와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첫 집은 군포의 투룸이었다. 보증금 500에 월세 40만 원.
방 하나엔 책상 두 개를 놓고 이불을 폈다 접었다 하며 안방으로 썼고 옆의 작은방엔 옷과 각종 잡동사니들을 두었다. 부엌 구석에 고양이들 공간을 마련해 캣타워와 냥이화장실, 방석 등을 놓고 중고로 세탁기와 냉장고를 구입해 소꿉놀이하듯 살았다. 학자금대출금을 빨리 갚는 게 목표라 앞으로 집을 사야겠다 뭐 이런 생각 따윈 전혀 할 겨를이 없었다.
2년을 살고 결혼식을 한 후 같은 동네 방 3칸 빌라로 이사 갔다. 보증금 1500에 월세 35만 원. 80년대 지어진 매우 낡은 빌라였지만 방이 3칸이라 1칸은 고양이방으로 쓸 수 있었다. 고양이를 입양하 고나서야 남편이 고양이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파양을 하니 마니 문제로 우리는 엄청나게 싸웠고 파양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게 용납이 안 됐던 나는 냥이들을 몇 개월 탁묘 보냈다가 고양이방을 마련한 후에야 데려올 수 있었다.
그래도 결혼식을 했으니 가전은 좋은 걸 쓰자 싶어 나무창문을 비롯해 모든 것이 낡았던 그 집에 에어컨, 냉장고, tv는 새 걸 사서 들여놓았다. 안방엔 장롱과 티브이만 놔서 넓게 쓰고 작은방엔 책상과 책장을 놓고 쓰니 참 좋았다. 하지만 겨울이면 창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급기야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데 그 위치가 하필 전등이라 목숨에 위협을 느낀 우리는 이사를 결정한다. 남편과 내가 출퇴근하기 용이한 7호선 라인을 찾다가 우연히 광명을 알게 되고 15평에 방 3칸 전세 1억 1천 빌라로 이사했다. 이전 집보다 좁았지만 나무창문이 아니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집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방 1개는 고양이방이라 사실상 방 2개를 쓰는데 아이를 키우기엔 너무 좁았다. 안방이 낮에는 아이 놀이방, 밤에는 침실이 되었다. 2년 후, 이젠 정말 너무 낡지 않으면서도 거실이 있는 집에 가야겠다! 싶어 아이가 13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고 구직 중이었던 나는 낮시간을 활용해 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당시 우리가 갈 수 있는 금액대의 동네 모든 빌라매물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괜찮은 집을 찾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깨끗하고, 위치 좋고, 넓은 집을 원했으나 3개 모두가 충족하는 집은 우리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없었다. 늘 3개 중 1개가 부족했다. 결국 돌고 돌아 구한 집은 우리가 정한 전세금액에 월세까지 줘야 하는 반전세 아파트였다. 마지막으로 부동산에서 그 아파트를 보여줬을 때, 난 아파트가 이렇게 쾌적한 곳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 거의 처음으로 살면서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이 뭔지를 실감했던 것 같다.
보증금 2억 1천에 월세 30만 원. 반전세로 2018년에 처음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언제나 방 두 칸 이하의 낡은 집에 살았고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에 산 것이 중학생 때였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늘 원룸 투룸 낡은 빌라 등등을 전전하며 살았던 나에게 2007년에 지어져 구조까지 너무 잘빠진 24평 방 3칸 화장실 2개 아파트는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22층이라 전망까지 끝장나게 좋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행복은 불행의 서막이기도 했다. 이제 이 집보다 안 좋은 곳에서 살게 된다면 난 불행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이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계약된 2년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은 이 집을 매물로 내놨다고 했다. 당시 남편과 나에겐 그 집의 매매가가 너무 큰돈이라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옆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를 갔고 그 집에 살던 중 다행히 청약에 당첨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2018년 당시 간절히 사고 싶었던 그 집과 비슷한 가격으로 2022년 12월, 새 아파트를 샀다. 금리가 높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그때 간절했던 내 마음을 생각하면 불평해선 안될 것 같다. 난 정말 깨끗하고 넓은 내 집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돈이 주는 행복을 늘 경계하고 싶었던 나는 돈이 주는 행복에 기꺼이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은, 이왕 굴복할 거면 정말 제대로 굴복해서 내 집을 보며 복잡한 감정 안 가지고 그냥 온전하게 만족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출금 갚기 위해 다니는 회사를 너무 괴로워하며 다니지 않을 수 있도록. 돈이 주는 행복이 너무 달콤해서 다른 고통은 좀 상쇄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브로콜리 너마저 <바른생활>의 가사처럼.
행복을 느끼는 것도 능력에 달린 것이라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행복을 놓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격이 팔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건 내 고칠 수 없는 기질의 영역이고 생각이 많아서 얻은 것도 많다. 하지만 집을 사기까지 겪은 일들을 돌아보며 뿌듯함과 함께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함을 매일매일 느끼는 나는 이제 좀 편해지고 싶다.
돈이 주는 행복을 인정하자. 나는 새집에서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대출금을 갚는 여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내 집 없는 설움과 낡은 집에서 사는 불편보다는 덜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제 인정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