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쉐 -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고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가 좋았을까. 10대 시절은 아닌 것 같고 대학와서 과제한다고 정돈된 글을 쓰다보니...? sns를 시작하다보니...? 온라인 커뮤니티활동을 하다보니...? 그즈음부터 글쓰기가 재미있었던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직업으로 삼겠단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고 40살이 된 지금까지 그저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와중 숨 쉴 구멍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항상 생각이 많다보니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로 글쓰기는 참 유용하다. 내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욕구도 커서 온라인에 글을 종종 올린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너무 수치스럽게도 아무런 반응을 못얻을때가 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와도 여전히 글쓰기가 좋다.
얼마전 대만작가 천쉐가 쓴 <오직 쓰기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는데 정말 좋았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좋아해 자주 읽다가 어느순간 그런 책들을 읽고나면 늘 하는 다짐인, “나도 정말 꾸준히 글을 써봐야지!”를 지키지 못해 자괴감이 커 글쓰기주제 책읽기를 중단했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글쓰기에 관한 책이 읽고싶어져 이 책을 펼쳤다. 처음 만나는 작가라 기대치가 낮아 그런지 기대이상으로 좋았다. 읽다가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릴 정도로.
70년생 천쉐작가는 글쓰기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으나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생계와 글쓰기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부모님의 빚을 갚아주고 그 와중에 아픈 자기 몸을 돌보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의 이야기는 사실 전업작가로 자리잡기까지 긴 고통을 감내한 다른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와 겹쳐졌다.
어찌보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님에도 이 책이 좋았던건 작가가 가진 현실감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였던것같다.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가야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안 써도 된다면 굳이 쓰지 마라는 쿨한 조언이나 그럼에도 써야겠다면 나는 이런 방법으로 글쓰기를 지속해왔다며 자신이 쌓아온 삶의 지혜를 상세하게 나눠주는 모습에서 연륜있는 다정함같은걸 느꼈다.
가장 감동받은건 역시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사랑이었다. 작가는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해야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역시 이분도 그런분이었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생계를 위해 옷장사를 하는 와중에도 새벽에 쓰고, 차타고가며 글 구상하며 그렇게 너무나 치열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왜 쓰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참으로 담백한 문장으로 전달하는데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이렇게 글을 쓰지 않고는 못사는 사람들의 책을 읽고나면 늘 느끼는 것이 있다. 나는 글을 안써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쓰기보단 읽기가 더 즐겁고 읽은 책들을 더 잘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평소 떠오른 많은 생각이나 고민을 글로 쓸 때가 있지만 안 쓸 때가 더 많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기대하지만 그 기대가 좌절될 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한없이 깎여왔으므로. 내가 거쳐 온 그 수많은 흔들림은 글쓰기를 향한 내 애정이 어느정도인지를 충분히 가늠하는 척도 가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또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뜻뜨미지근하게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는 취미고 삶을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다. 이런 애매함이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장강명작가는 명작을 쓸 수 만 있다면 자기 손가락이 몇 개 잘려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런걸 보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정말 높은 수준의 성취를 향한 미친 열정이 있는 것 같다.
난 그런 열정도 없고, 그저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고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깊이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경험한 좋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쓴다. 하지만 써봤자 응답은 거의 없다. 그때마다 상처받고, 그러다 또 쓰고, 또 상처받고, 내 글을 스스로 평가해보곤 좌절하고, 의욕이 꺾이고, 자괴감을 느낀다.
소수의 몇 명과 깊이 대화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내 생각, 특정 콘텐츠에 대한 내 감상을 나누는 정도로 글쓰기를 잘 활용하고 싶은데 이건 결국 나 혼자선 할 수 없고 타인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어렵다. 글쓰기 자체도 결국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욕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 취미로 글쓰기를 하는 내 비극은 결국 타인에 대한 내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천쉐작가도 작가로 데뷔는 했지만 오랜시간 작품이 조명받지 못하는 시간을 견뎌야했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쓴다. 글쓰기 그 자체가 그들을 살게 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왜 글쓰기가 괴로운가? 글쓰기 그 자체보다 글쓰기가 가져오는 효용(타인과의 소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도구가 아닌 목적이라면 좋을텐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어제 영화 세계의주인 GV 후기를 썼는데 블로그에도 인스타에도 댓글이 한 개도 달리지 않은걸보니 허무함이 밀려와 헛웃음이 났다. 페이스북에는 페친 한분이 GV가서 부럽다고 댓글을, 그리고 서지현검사님이 잘읽었다며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 글은 서지현검사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긴 글이기도 하니 검사님이 읽고 댓글을 달아주신것에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내 마음이 담긴 글이기도 한데 거기에 담긴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해 아무도 무슨 말이든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이 글을 왜 쓴건가... 싶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의 비극임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소통에 실패할것임을. 누구에게라도 피드백을 받고싶어 여기저기 글을 올리는건 또 너무 앵벌이짓같아서 사실 하기가 싫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세군데에 올린것도 사실 부끄럽다. 내 글을 읽어줄사람을 찾기위해 발품팔고 읽어달라고 구걸하고싶진 않다. 그냥 쓰고싶으면 쓰고, 사람들이 읽든 말든 초연해지고싶다. 하지만 영원히 이 소망은 이뤄질것같지 않다. 나는 계속 실패하고 상처받으며 글을 쓰겠지. 개나소나 다 글을 쓰는 이 시대에, 이젠 AI까지 글을 너무 잘써서 사람이 쓰는 글의 가치는 더욱 떨어지는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글은 가치없다는걸 매 순간 확인하며 글을 쓰고 중단하고 또 다시 쓰겠지. 이것이 글쓰기를 애매하게 사랑하는 내가 받는 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