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뚱뚱하고 못생겨지는 것에 대한 내 수치심과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 얼굴을 좋아한다. 성형의 유혹을 종종 받긴 하지만(세상에 예쁜 여성들이 이렇게 많고, 성형외과 광고가 넘쳐나는데 어떻게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적은 없다. 피부과 시술도 받아본 적이 없다. 피부관리샵은 결혼식 즈음 몇 번 갔다. 내 주변의 여성들에 비하면 외모에 내가 들이는 에너지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낳고서는 그나마 바르던 스킨로션조차 잘 챙겨 바르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이전보다 절대적으로 시간, 비용, 에너지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산 후 급격히 살이 찌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내 피부를 보고 비로소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급격하게 못생겨진 내 얼굴과 몸을 보고 두려움과 수치심이 밀려왔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방치했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그렇게 3년간 15kg을 뺐다.
내가 그렇게까지 감량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수치심이었다. 하지만 표준체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도 ‘10kg는 더 빼야 핏이 살 텐데...’라고 생각하는 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도대체 누가 심어준 거지? 의문이 생겼다. 건강이 제1의 목적이 아닌 미용이 제1의 목적이 된 다이어트는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성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들었고 ‘노력’만으로 가능한 체중감량조차 해내지 못하는 나의 ‘의지 없음’을 탓하게 했고 수치심의 구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표준체중을 달성한 이후 다시 한번 빡센 다이어트를 통해 5kg가량을 뺐다가 반년 간 다시 차곡차곡 찐 덕에 도로 5kg이 늘었다. 다시 그때의 몸매를 갖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명백히 잘못된 식습관으로 찐 것이며 체지방은 줄고 근력은 늘린 그때의 상태가 일상 컨디션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만족감이 커서 자존감도 높았다. 이건 다이어트의 분명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도 지금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처럼 또다시 다이어트 제1의 원동력이 ‘수치심’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자리 잡게 만들고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기르는 등 다이어트가 가진 이점이 분명 있지만 수치심이 가장 큰 동력이 되는 순간 나는 끝없이 스스로를 혐오하는 굴레에 빠져들었다. 1~2kg만 더 쪄도 스스로를 ‘돼지’라고 폄하하며 내가 가진 다른 삶의 조건들을 무시한 채 의지박약인 나를 미워했다. 그렇게 나를 대하다 보니 타인에 대해서도 결코 너그럽거나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기 힘들어졌고 나아가 모질어졌다.
나의 수치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못생긴 여자의 역사>를 읽으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의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뿌리 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하찮게 보던 시절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만을 인정해주고 고귀하게 여기던 시절, 그리고 차마 대놓고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지는 못하지만 여성 스스로가 매우 높은 기준으로 외모관리를 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옥죄게 만드는 오늘까지. 책은 못생긴 여자가 겪는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차근차근 짚어주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걸 완전히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이토록 크게 차이 나는 건 화가 난다. 능력만 있어도 대우받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거기에 반드시 아름다움이 더해져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못생긴 얼굴에 능력이 있으면 폄하당하기 쉽다. 늙은 남성은 지혜로울 경우 그 외모마저 존중받거나 칭송받을 수 있지만 여성은 노화 그 자체로 멸시를 당한다. 뚱뚱해지는 순간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혀 혐오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 부분은 그나마 요즘은 남자도 마찬가지니 위로를 삼아야 하는 걸까. 그럼에도 뚱뚱한 남자보다 뚱뚱한 여성이 더 혐오당하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나 자신이 가진 고유함과 개성을 발견하고 가꾸고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주입해놓은 생각 때문에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큰 불행이다.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왔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싸워야 한다. 결국 내 몸은 점점 늙어갈 것이고 살이 쉽게 찌는 몸으로 바뀔 것이다.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의 몸은 더욱 그렇다. 책을 읽으며 주름이 늘어난 얼굴, 쳐진 뱃살, 반드시 아프고 고장 나게 될 나의 몸을 생각했다.
여성에게 반드시 젊고 아름답기를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 책은 도움을 준다. 한 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하나씩 바꿔갈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 줄 것이다. 못생기고, 늙고, 뚱뚱해지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진 두려움은 못생기고, 늙고, 뚱뚱한 존재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는 것이 부끄럽고 아프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너무나 내면화되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름다움과 추함의 도그마”(287p)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쉽지 않을 것이다. 함께 싸우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