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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둥지 Aug 30. 2022

EP1. 20살의 서울불시착

나는 서울에 올 마음이 없었다.

나는 정말로 서울에 올 마음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들이 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공부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흔히 말하는 '인서울'을 했고, 덩그러니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내 본가가 좋았다.

우리 집 마당에서 멸치를 얻어먹던 고영부부

내 본가는 지방 농촌으로, 3시간에 한번씩 버스가 오는 깡촌이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왼쪽에는 벚꽃이, 오른쪽에는 유채꽃이 만발한 산책로를 전세내듯 쓸 수 있었다. 강아지들을 다 풀어놓고 키워 친구처럼 지내는 동네 강아지가 여럿이었고, 길고양이들과 애틋하고 귀여운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가 몇 없는 동네라 동네 어른들은 다 나를 예뻐해주셨다. 장날이면 할머니들의 무거운 장바구니를 버스에 올려드리곤 붕어빵 몇마리를 얻어먹기도 했다. 나는 그냥 이 소박한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문화시설도 많고 기회도 많은 서울!'의 화려한 모습들을 미디어로 접하면서도 그냥 우리 동네가 좋았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서울 사람들은 발걸음이 다 빨라


처음 서울에 와서 자취방을 구했을 때, '와, 정말 내가 서울에 왔구나'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본가인 농촌에서 산책을 할 때는 주변에 누가 있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그런데 웬걸, 서울에서 그렇게 걸으니 남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휙휙 빠른 걸음으로 나를 제쳐갔다.'아, 이게 서울의 속도구나', 이 낯선 도시를 체감하며 앞으로의 서울 적응에 대한 막막함을 느꼈다. 서울에 친인척하나 없던 내가 서울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무서웠고 나와 말투도 속도도 모두 다른 서울이 꼭 외국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지 않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빌딩 숲 속의 첫 자취방에서 부모님없이 잠들 때의 그 막막함과 외로움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 때 꼭 서울에 불시착한 기분이었다.

서울에서의 첫날밤, 너무 보고싶었던 고향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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