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 2
앞서 율곡의 <선비행장>의 처음과 끝이 어머니의 재능에 관한 내용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중간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들 율곡의 시선에서 본 "어머니의 성품" 묘사였다.
율곡은 자신이 기억하는 일화들에서 어머니의 성품에 대해 길게 기록했다.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지조가 굳고 깨끗했으며 거동은 여유로우면서도 고요하며 일처리도 편안하고 자상하게 하셨다. 말씀은 적고 행동은 조심스러웠으며 또 스스로 겸손하였기에 신명화 공께서 사랑하고 아끼셨다. 성품 또한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님께 병환이 있으면 얼굴빛이 반드시 슬픔에 잠겼다가 병환이 나으신 다음에야 평소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자당이 절약하여 윗분을 공양하고 아랫사람을 길렀는데 모든 일을 맘대로 한 적이 없고 반드시 시어머니에게 고하였다. 그리고 홍씨의 앞에서는 희첩(姬妾, 시중드는 여종)도 꾸짖는 일이 없고 말씀은 언제나 따뜻하고 안색은 언제나 온화했다. 가군께서 어쩌다가 실수가 있으면 반드시 간하고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를 하였으며 좌우가 죄가 있으면 꾸짖으니 종들도 모두 존경하며 떠받들고 좋아했다."
열여섯 아들의 눈에 비친 어머니 신사임당의 모습은
조선사회가 지향했던 "군자"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사임당이라는 호는 십대의 소녀 신사임당이 스스로 지은 호라고 전해진다.
사임에서 사는 본받는다는 뜻이고, 임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뜻하는데,
여기서 태임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을 뜻한다.
즉 소녀 신씨는 십대 시절에 유교에서의 이상적인 인물, 즉 "군자를 지향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자신의 호를 사임당으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죽은 뒤 아들에 의해 군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즉 신사임당은 십대 때 세운 뜻대로 삶을 살아갔다는 말이다.
신사임당은 7남매를 낳고 길렀고, 종부로서 가계를 꾸렸으며, 그 와중에 다작을 남긴 훌륭한 화가였다.
바쁜 와중에 자녀 한명한명 교육에 신경쓰진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자녀들이 모두 바르게 잘 자란 것은
그녀가 군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한 것"
그 모습은 아들의 눈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써서 관리하는 대신, 자녀에게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신사임당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자녀교육의 비법이 아닌가 싶다.
신사임당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어머니였으며, 군자를 지향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았다.
각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잘 사는 것, 엄마인 내가 먼저 바르게 살아가는 것.
내가 신사임당에게서 배우는 자녀교육법은 오로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