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은 어떤 어머니였을까

신사임당에게서 찾는 자녀교육법1

by SOL

신사임당이 자녀 교육에 투철한 어머니가 아님은 앞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은 어떤 어머니의 모습이었을까.


살아생전 신사임당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에

신사임당 일대기로는 유일한 율곡이 쓴 <선비행장>에 의존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열여섯의 율곡은 <선비행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풀어냈다.


그 <선비행장>의 처음과 끝,

그러니까 어머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과 가장 마지막에 강조하고 싶은 모습은,

모두 "어머니의 재능"에 관한 내용이다.


<선비행장>의 가장 처음은

"어머니가 경전에 통달하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쓰셨다. 또 바느질도 잘 하시어 수 놓는 것까지 정밀하고 뛰어나지 않음이 없으셨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내용은

"어머니는 평소 먹그림 솜씨가 뛰어나셨는데,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잘 그리신 것이 매우 절묘하다. 또 포도를 그리셨는데 세상에서 시늉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림들을 모사한 병풍이나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해진다."이다.


즉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으며, 자랑하고 싶은 내용은,

어머니의 "재능"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실상 훌륭한 인물의 어머니는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위인의 어머니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원경>에서도 원경왕후가 세종의 어머니로서 현명한 모습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이와 함께 회자되는 이황에게도 그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홀어머니가 계신다.

이순신 장군이 그 일기에서 주로 "하늘"이라고 불렀던 그의 모친도 훌륭한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등등 훌륭한 인물의 어머니는 그 훌륭한 인물의 수만큼 많다.

그런데 왜 유독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만이 이런 신화가 만들어진 것인가.


그것은 율곡의 후예들인 서인노론학파들이 조선 후기까지 정권을 이어갔고,

해방 후에도, 연배가 위인 이황이 아닌 이이가 5천원권에 들어갈만큼, 율곡학파가 정권을 장악한 측면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보다 신사임당이 어머니로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화가라는 "그녀만의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을 구성하는 두 가지 정체성, 화가와 어머니.

그동안 "어머니"에 더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화가"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신사임당이 여러 어머니 중에 특별히 이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저 어머니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화가"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되어도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꼭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신사임당의 삶을 통해 나는 배운다.

신사임당은 어머니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가 무언가가 되고 싶어진다면, 아이들 때문에 그것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진정 훌륭한 엄마는, 자식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엄마이다.

내가 내 아이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 내 아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내가 내 아이의 삶을 구상하는 대신, 나는 내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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