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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Apr 08. 2021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알콩이 탄생 1일째

  마음이 무거웠다. 예정일이 지난 엄마 뱃속의 알콩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부풀대로 부푼 배를 안고 아내와 나, 간호조무사님이 함께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수술을 앞둔 아내의 얼굴이 보기 안쓰러웠다. 내가 대신 들어갈 수 있다면. 사실 임신 기간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배가 훨씬 크고 넓은데, 알콩이를 내 배에서 키워줄 수는 없을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잠시 헤어졌다. 나는 따라갈 수 없어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앞 대기실에 진행 현황이 뜨고, 문자가 온다. 수술 대기 중입니다. 수술 중입니다. 


  수술을 시작한 지 20분쯤 되었을까. 아내의 이름과 함께 보호자를 찾는다. 급히 대답을 하면서 수술실이라는 큰 글씨가 적힌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마주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3.2kg의 꼬마 숙녀. 신장 48cm를 자랑하는 갓 태어난 여자 아이를 말이다. 순각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 작고 어여쁜 아이가 내 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태명이 적힌 모자를 쓴 아이와 간호사님의 도움으로 함께 신생아실로 향했다. 간단히 몸을 닦은 알콩이를 간호사님과 함께 손가락, 발가락은 다 이상 없이 있는지, 눈, 코, 입, 귀는 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가졌다. 그리고 오늘은 알콩이를 볼 수 없는 아내를 위해 1분가량의 동영상을 찍었다.

  눈, 코, 입은 나를 닮았다. 아빠를 닮아야 잘 산다던 속설이 문득 떠올랐다. 엄마를 닮기를 바랐는데. 그래야 이쁠 텐데. 다행히 얼굴 형태는 엄마를 닮아 동글동글하니 귀여웠고, 새초롬하게 빨간 입술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사실 누구를 닮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알콩이가 더 커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알콩이를 조금 더 신생아실에서 씻기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나는 다시 수술실 앞으로 내려갔다. 문자가 올 테지만 도저히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조금 더 기다리고 나니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졌다는 메시지가 도착하면서 대기실의 현황도 수술 중에서 회복 중으로 바뀌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또다시 눈물이 왈칵했다. 살짝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병실로 가서 돌아올 아내를 기다렸다.

  다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기 아직 비몽사몽 하는 아내가 병실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아내. 고마웠다. 잘했다고, 무사히 수술을 잘 버티고 돌아와 다행이라고. 그렇게 마주 보고 웃은 우리는 함께 알콩이를 찍은 동영상을 보았다. 


  수술 전 날부터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12시가 조금 넘어 나는 아내의 곁을 떠나 꿈나라로 잠시 외유를 다녀왔다. 4, 5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아내가 깨 있었다. 미안했다. 수술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인데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아침 식사로 나온 미음을 먹을 때도 몇 숟가락 먹지 못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 남자의 몸에 인공자궁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상상을 수십 번, 수백 번 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점심을 먹기 전에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신생아실로 알콩이를 보러 갔다. 내가 보러 갈 때는 잘 움직이지도 않던 알콩이는 엄마를 보니 눈을 감고 있어도 좋은지 연신 입을 조물거렸다. 서운하게 말이다. 아내는 사진과 실물이 너무 다르다며, 알콩이가 너무 작다고 신기해했다. 이해했다. 나도 어제는 많이 신기해했는걸. 


  결혼 전에는, 임신 전에는, 출산 전에는 잘 몰랐다. 아마 남자도 여자도 잘 모를 것 같다. 임신이, 출산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 내 일이 되고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출산 후 회복 중인 아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아내와 알콩이. 두 여자를 더더욱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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