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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Jun 14. 2022

운동장에 무성히 자란 풀

이제는 갈 수 없는 모교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같은 이름의 국민학교(언젠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지만, 내가 졸업하고 나서야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걸어서 10분,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고등학교는 걸어서 2, 30분을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었다. 심지어 고1 가을 즈음에 이사를 가면서, 도보 2, 30분은 버스로 2, 30분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학교였다. 가장 먼저 중학교가 바뀌었다. 내가 42회 졸업생이었고, 이미 학교 다닐 때도 건물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다시 짓는다는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졸업하고 나서 얼마 후 건물을 차례로 부수고 같은 자리에 새 건물을 올렸다. 아쉬운 것은 직선거리 100m를 자랑하던 넓은 운동장은 자그마한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서울 외각에 위치하여 운동장 넓은 것 하나만큼은 자랑거리였는데. 하긴 체력장에서도 100m 달리기가 50m 달리기로 바뀌었으니 굳이 운동장이 넓을 필요는 없는데. 남자 입장에서 아이들이 축구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기는 하다.


긴등마을 547번지가 지금의 M아파트 8단지로 바뀐 지금, 국민학교가 있던 자리는 M아파트 9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재개발이 되면서 학교가 위치를 옮긴 것이다. 새로 옮긴 자리는 M아파트 6단지 옆, 8단지 앞이다. 예전에 살던 547번지에서 가까워진 셈이다. 딱히 초등학교에 갈 일이 없는지라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보지는 못했다.


고 1 가을에 이사를 가셨던 부모님은 6년 전 다시 돌아오셨다. 그것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길 건너편으로. 아니, 그럴거면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이쪽으로 이사를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수차례 했다. 어필도 해보았다. 그래봐야 이미 지난 일인 것을. 그래도 학교 앞이 본가라서 결혼 후에 와이프와 모교를 거닐면서 여기는 뭐다, 저기는 뭐였다. 여기로 담을 넘었다(?!) 등등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 마지막 추억마저도 이제는 정말 추억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재개발을 하면서 M아파트 쪽에 학생들이 늘어나고, 그런 추세에 발맞추어 고등학교도 원래 부지에서 대단지 근처로 옮긴 것이다. 아직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존의 학교 부지는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이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운동장은 어느새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더라. 


내 기억 속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이제 정말 기억 속에서만, 혹은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속상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바라기는 대학교만은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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