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백무동으로 처음 지리산에 올랐다. 같은 해 가을, 처음 성삼재로 들어 세석대피소를 거쳐 백무동까지 종일 걸었는데,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하루에 그만큼 걸어본 일은 없다.
늦은 밤 용산역을 출발해 여수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새벽 3시가 조금 못 되어 구례구역에 닿았다. 역 주변은 열차 도착에 맞춰 성삼재로 향하는 시내버스 한 대와 버스를 타지 못한 이들을 마저 태우려는 택시로 북적거렸다. 길눈과 정보에 밝지 못했던 나는 예약한 택시에 홀로 몸을 싣고 성삼재에서 내렸다.
밤을 달리던 열차 안은 대낮같이 밝았다. 통로 측 좌석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에 맞춰 앉고 서는 동안, 졸다 깨기를 반복하며 의식과 무의식을 오간 흐릿한 기억은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았다. 몽롱한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무궁화호 야간열차는 이제 세상에 없다. 성삼재에는 그때 없던 편의점이 동이 트기 전부터 사방으로 빛을 뿜어낸다.
성삼재에서 1시간 남짓 정돈된 길을 걸어 노고단 고개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주능선으로 접어들기 전, 노고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노고단(老姑壇)은 할머니께 제사를 모신다는 '할미단'에서 왔다.
지리산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천 년 넘게 국가의 중요한 큰 산인 '오악(五岳)' 중 남악(南岳)으로, 국가가 주관하는 제사를 모시는 산이었다. 제사의 대상은 마고할미(산신) 혹은 성모, 천왕, 성모천왕으로 불린 마고할미의 시대적 계승과 변형이었다. 할미는 할머니가 아닌 '한(큰)+어미', 즉 대모(大母)라는 뜻의 존칭으로, 지리산과 지리산이 품은 산신의 오랜 위상을 다시금 짐작할 수 있다.
돼지령 근처에서 산등성이를 등진 먼 하늘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다 임걸령 쯤에서는 사방이 환하다. 능선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한겨울에도 물이 콸콸 나온다는 샘이 있다. 샘물이 많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맛 좋고 양이 풍부하다는 데 나는 여태 마셔보지 못했다.
노루목에서는 주능선을 따라 나아갈 수 있고, 옆으로 난 길로 반야봉을 오르내릴 수 있다. 된비알과 계단을 올라 반야봉에 이르는 1km를 올랐다 되돌아오면 앞으로 나아갈 거리를 셈하며 마음도 몸도 숨 가쁘다. 노루목에서 걸음은 어디로든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프랑스어를 쓰는 청년 둘은 세석대피소를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오르면 사방의 먼 곳을 두루 볼 수 있는 높은 봉우리라는 말보다, 오르면 곧장 세석으로 갈 수 없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세석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여느 산객 못지않은 채비에도 제 속도와 추구하는 바를 알고 무리하지 않는 그들은 땀범벅이 된 채 여유롭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자주 날이 흐렸던 기억과 '기왕이면'의 유혹을 끝내 이기지 못해 오른 반야봉은 사방이 초록이다. 매년 이맘때 능선의 나뭇잎은 붉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는데, 9월까지도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던 영향으로 나무들은 대체로 초록이거나 초록 잎이 타들어 가는 듯 말랐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계절을 오롯이 겪어내는 산 앞에 나는 무력하기만 하다.
연하천대피소 위로 하나 둘 옅은 구름이 모여들어, 형제봉을 지날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진다. 운무와 어둠이 차츰 숲으로 가라앉는 동안 물을 머금은 돌로 내딛는 걸음은 속도를 낼 수 없다. 이보다 짧은 것으로 기억한 길은 그보다 길고 멀었고, 비바람이 불고 어둠이 드리운 산길에서 괜한 초조함이 인다. 제 몫을 다한 해가 비구름 아래로 남긴 짙은 흔적이 사라지고, 제 몫으로 남은 까만 길을 마저 걸어 대피소로 들어선다.
이튿날 아침, 대부분의 산객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같은 길을 걸어온 프랑스 청년들도 식수대에서 큼직한 물통을 가득 채우고 길을 나서는 중이다. 학창 시절 외우자 잊어버린 프랑스어를 겨우 떠올려 건넨 한마디의 인사에, 타국의 산에서 이방인이 어설프게 소리 낸 모국어가 신기하고 반가운지 웃음이 가득하다.
세석평전에서 삼신봉까지 남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은 삼신봉에서 다시 서쪽으로 상불재를 지나 쌍계사로 이어진다. 대피소에서 곧장 내려가려던 어제의 결심은 다시 뜬 오늘의 햇빛에 모습을 감추고, 저도 모르게 긴 능선으로 발을 들인다. 산을 걷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지난 어느 날, 이 길을 걸으며 왼쪽으로 해가 뜨고, 오른쪽으로 달이 지는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햇살 가득한 길 위에서 희미하게 떠오른다. 숲길에서는 체감되지 않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종종 우뚝 선 돌 위에서 뒤돌아 지나온능선을 바라보는 내내 휘청거린다.
잠시 상념에 잠겨 1, 2분 정도 길에서 벗어났다 되돌아가는 비탈에서 돌이 굴러 등산 스틱을 부러뜨렸다. 그 덕에 나의 두 다리는 무사하다. 사람의 흔적이 덜한 길에서는 사람이나 산짐승이 낸 몇 없는 흔적이 되려 커 보이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방심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어디서든 유효하다.
제단처럼 켜켜이 쌓은 돌 위로 삼신봉 표지석이 보인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지리산에 들어와 살던 정걸방이라는 도인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평편한 돌 위에 걸터앉아 있으니 한 산객이 올라와 정상석에 가져온 생수를 놓고 정성스레 기도를 올린다. 인근에 살았던 그는 다른 지역에 사는 지금도 이 산을 잊지 못해 종종 찾는다고 했다.
삼신봉과 삼신봉에서 서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내(內)삼신봉에서는 노고단에서 천왕봉, 중봉까지 동서로 이어진 지리산의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삼신봉은 남부능선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만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에서 약간 비켜난 위치에 있고, 지리적으로는 삼신봉이 산청군과 하동군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 주요 봉우리에서 다소 밀린 모양이다. 산은 사람도 지역도 차별하지 않고 품는데, 사람은 경계를 긋고 구분하는 일이 빈번하다. 천왕봉 정상석도 삼장면과 시천면, 마천면의 어느 경계로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좁은 정상의 한쪽 끝으로 위태롭게 치우쳐 서있다.
'기왕이면'이라는 마음을 다시금 차비해 청학동과 삼성궁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 쌍계사로 향한다. 두어 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을 거라는 삼신봉의 산객은 필시 구름을 타고 다녔음이 분명하다. 짝을 잃은 스틱이 길을 짚고, 두 다리가 더는 나올 데가 없는 힘을 어디선가 끌어와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지난달에는 아침으로 나아가는 어둠 속에서 피기 시작한 꽃무릇을 보며 산을 올랐고, 오늘은 밤으로 나아가는 어스름 속에서 지기 시작한 꽃무릇을 보며 산에서 내려온다.
프랑스 청년들은 자신들을 '게으른 산객'이라며 반야봉에 오르지 않을 거라 했다. 그들의 걸음이라면 해가 지기 전 여유롭게 중산리로 내려와 이틀의 종주를 기념하고 있을 법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매달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면서도, '기왕이면'을 앞세운 욕심으로 기나긴 길을 힘겹게 걸어 오늘도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어느새 품이 너른 산에서조차 여유를 잃은 나는 자꾸 욕심을 내고 자주 초조해진다.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흐린 눈'으로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뭇가지에 이질적으로 매여 있는 산악회 리본, 버젓이 잘 서 있는 이정표 아래로 자신들의 행로를 표시해 두고 가져가지 않은 종이, 실컷 먹고 놀고 나서 일말의 양심도 없이 그대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날이 흐리고 어두워져도 곧잘 눈에 든다.
반야봉을 오르는 길에 젊은 무리 예닐곱이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 놓고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웅성이는 목소리와 뒤엉킨 노랫소리는 그들을 마주하기 한참 전부터 들린다. 벽이 없는 산에서 소리는 훨씬 멀리까지 크게 들리고, 저들은 신날지 몰라도 산을 걷는 다른 사람들과 숲에 사는 동식물에게는 소음일 뿐인데 그런 자각은 없다. 오가는 길 내내 시달리느니 스피커를 꺼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동안 언짢은 표정들이다. 무례와 무지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다.
주능선의 탐방로 옆에 무더기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그 상태와 지난 며칠의 날씨로 보아 아주 최근의 것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평일의 산행길에 앞서 만난 젊은 무리로 심증이 가지만, 제대로 알 길도 탓할 방도도 없고 그저 주워 담는다.
무분별한 야영과 취사로 몸살을 앓았던 역사는 반쯤 묻혀 있던 쓰레기와 함께 발굴된다. 느타리버섯 라면은 89년에 나와 90년대 단종되었고, 500원이라고 인쇄된 티피 땅콩초코볼은 지금 그 모양도 가격도 상당히 다르다.
- 2024년 10월 / (1일차) 성삼재-노고단-반야봉-세석대피소, (2일차) 세석대피소-남부능선-삼신봉-상불재-쌍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