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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온 결 Mar 03. 2024

안경을 쓰시나요?

흐린눈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

저는 안경을 벗고 눈에 아이라인을 그리면 전지현 같아요.

그러나 항상 안경을 쓰고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지현같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요.


눈이 나빠서 안경을 씁니다. 너무 멀리까지 잘 보이는 안경을 쓰면 집안일을 할 때, 글을 쓸 때 조금 어지러워요. 그래서 적당히 보이는 안경으로 맞춰서 쓰고 다닙니다. 그래서 항상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요. 흐릿한 눈으로 살아가는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창 밖에 바람이 그치고 해가 좀 들었습니다.

가만히 나무들을 보는데 꽃이 피어있는듯 합니다. 아직 전기장판을 켜고 자는 쌀쌀한 날씨인데 벌써 꽃이 피었나? 며칠 전부터 꽃이 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정말 꽃인지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꽃이 아닐수도 있으니깐요~


저 혼자 멀찌감치 꽃을 감상합니다.

그것이 꽃이든 아니든 제가 흐린 눈으로 보기엔 꽃이 맞거든요.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는게 좀 편해집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잘 안보이고(노안은 아님;;) 아이들 입에 묻은 초콜릿도 그냥 지나쳐요.

남편은 그런 저에게 불만이 많지만, 불평이 많은 남편조차 흐린 눈으로 바라보면 차은우같습니다.


흐린 눈으로 치워야하는 집안꼴을 못 본 척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이제 글 하나를 써보았으니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린다음 집을 좀 치워봐야겠어요.


나는 이렇게 흐린 눈으로 세상을 슬렁 슬렁 보는데, 사람들은 또렷하게 나를 바라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좀 불편해 집니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감추기 위해 저와같이 눈이 흐린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정확하게 보다가는 정작 집중해야 하는 것을 놓칠거 같기도 해요.


안경을 쓰시나요?

흐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오후입니다.


근데, 날이 흐린게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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