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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은 Jan 17. 2024

스물아홉에 만난, 기타 예찬

배움이 가져다 주는 설레임에 관하여

지난 늦가을 기타 레슨을 시작했다. 지금은 배운지 2달 반이 넘어가고 있는데 기타에 완전 재미가 들렸다. 오늘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요새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물어봤을 때, 기타를 떠올렸다. 처음에 기타가 재미없다고 했을 때는 피아노를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사람이 도레미파솔라시도 배우면서 재미없다고 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밴드 음악을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기타를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 아, 아니다. 몇 년 전에 한 번 통기타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코로나가 터지면서 금방 또 그만하게 됐었지. 어릴 때 가야금도 바이올린도 피아노도 조금씩 했었는데 엄마가 기타를 배우라고 했으면 내가 기타리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할 정도로 기타가 좋다. 통기타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해봤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그때도 상황이든 뭐든 간에 그만두게 되었던 것을 보면 어떤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일도 마치 사랑처럼 타이밍인가 보다 싶다.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게 되는 일은 언제나 타이밍이 도와주어야 하는 거구나. 그런 운명론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기타는. 맞는 시기에 시작했다면 이제는 끌고 나가야겠지. 그런 다짐도 하고.


기타를 시작한 뒤에 원래도 많이 듣던 음악을 훨씬 더 많이 듣는다. 혼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을 들으면서 보내는 것 같다. 이보다 더 들을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이것도 칠 수 있을까? 저것도 칠 수 있을까? 하면서. 좀처럼 찾게 되지 않던 그린데이도 듣고 선생님이 이런 것도 들어보라며 소개해 주신 블루스도 듣는다. 연습을 열심히 해가면 선생님이 배우는 게 빠르다고 칭찬을 해주시는데 그럴 때는 마치 아이가 된 것 같은 맑은 기쁨이 올라온다. 또 기타 치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 같은 걸 알게 될 때면 턱 없이 부족한 실력과는 별개로 마치 이미 슈퍼 기타리스트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스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듣던 The kooks의 곡들을 들으면서 추억에 젖었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많이 들었었는데. 교복을 입고, 이어폰을 낀 채로 창 밖을 보고 있는 내가 마치 타인을 보는 듯 머릿속에 그려졌다. The kooks와 keyshia cole 그리고 50cent의 향수가 뒤섞여있는 학창 시절을 회상했다. 만약 음악이 퍼스널컬러라면 난 뭘 갖다 대도 다 상관 없는 톤파괴범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인데, 앞서 늘어놓은 아티스트 셋만 봐도 그렇다. 거의 유일하게 듣지 않던 장르인 헤비메탈 쪽도 작년에 만난 친구에 의해 입문해서 요새는 조금씩 듣고 있다. 물론 내가 몰두하는 장르는 아니라 여전히 찾아 듣진 않지만….


지금은 오아시스의 곡들을 배운다. 일렉기타 입문자들은 다들 오아시스를 한번쯤 거쳐가나 보다. 늘 듣던 음악도 기타 때문에 다시 듣게 될 때면 감회가 새로워지는데, 오아시스 곡들은 이렇게 간단한 코드로 어떻게 이토록 마음을 울리는 곡들을 많이 썼을까? 싶어 진다. 그래서 노엘 갤러거가 더 좋아지나 보다. 지난번 레슨 때는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 곡을 완곡했는데 그게 ‘Live forever’였다. 연습하면서 유튜브에서 원곡 말고 릭앤 모티라는 미국 카툰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어쿠스틱 버전을 만났는데 또 그 버전이 나의 심금을 완전 울려버린 거지.


연습을 한다고 원곡을 그렇게 듣고도 릭앤 모티 버전이 너무 좋아서 집안일을 할 때도 계속 틀어놓고 지냈다. 코드가 익숙해진 후 그 버전에 맞춰 기타를 치고 있으면 세상에 나와 기타와 음악만 있는 듯한 온전한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는 그런…. 그런 순수한 감정의 결정을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이 아닌 입이 없는 물체에서 만난 게 얼마만이던가? 옛날에, 피아노를 배울 때 내가 원하는 악보를 어지간하면 다 칠 수 있어 몇 시간이고 피아노만 쳤던 날들 이후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타는 입이 없지만 내게 소리로 말하는 것도 같아서 이렇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기타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행복의 순간들이 있다면 삶이 꽤 괜찮아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던 음악들을 이전과는 다른 귀로 듣게 만들고, 잊힌 감각도 되살리는 배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대의 끝자락에 만난 새로운 사랑 기타. 모든 사랑이 그렇듯 울고 웃고 때론 인내해야 하며 질리고 슬프리라. 그러나 사랑의 다른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배워서 오랫동안 함께이고 싶다.



아래는 글 속의 Live forever - Rick and Morty OST 버전.

나 처럼 계속 듣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이미 1시간 루프 영상이 올라와있다.

https://youtu.be/9HLvgLjLlyE?si=k2FF2Zr0HzJSWm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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