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듬 Nov 15. 2024

시장, 아끼는 것, 버려진 것

인물 탐구

시장

<아끼는 것, 버려진 것>에 대하여 글쓰기 2차 과제


제이는 매일 걷고자 애쓴다. 계절이 바뀌면 달리지던 걸음걸이가 이제는 하루하루 안 좋아진다. 제이는 옆에 우형이 있으면 손을 잡고 의지한다. 제이가 계단을 내려갈 때는 우형이 아래쪽에 서서 어깨를 대준다. 어깨를 붙들고 내려가면 아주 안정적이다. 우형의 넓은 어깨는 계단의 손잡이보다 제이의 걷는 높이에 맞춤이며, 우형의 내려 걷는 속도는 제이의 것에 딱 맞춰져 있다.

화창한 가을 날씨도 좋아 운동 삼아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선다. 공원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계단을 앞에 두고 있다. 폭이 5m는 될법한 넓은 계단에 손잡이는 있지 않다. 아이들도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라 계단 간 높이가 낮아 제이는 편하게 걷기 어렵다. 우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준다. 제이는 우형의 손을 꼭 잡는다. 사람이 많고 법석인 분위기 속에 잠시 허공을 보며 한눈을 팔던 제이는 걷던 페이스를 잃고 자신의 발에 또 다른 발을 채고 많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찰나 우형이 손을 재빠르게 걷어 올린다. 우형 덕에 제이는 상체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발도 좁은 계단 위에 바로 놓는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녁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은 운동에 버금가는 일이다. 내딛는 다리의 무릎이 펴지지 않는 강직이 있고 발목이 제멋대로 돌아간다. 발을 다 들지 못한 채 발 앞으로 땅을 쓸곤 한다. 불완전한 걸음걸이를 보조해 준다고 우형은 먼저 손을 내밀곤 한다. 제이는 운동하러 나온 거라며, 혼자 힘으로 좀 더 걷겠다고 내민 손을 사양하고 걷는다. 몇 걸음 걷다가 발이 땅을 쓸면 어쩔 수 없는 척 손을 붙들고 만다. 운동하러 나온 것이기에 잡은 손에 최대한 힘을 뺀다. 넘어질 뻔한 때에만 무게를 싣겠다고 손을 가볍게 잡는다. 최근 들어 제이가 무게를 그 팔과 손에 자꾸 실으니 우형도 걸음을 보조하는 일에 힘겨움을 느낀다.


이들에게 명절이 다가온다. 여러 번 맞이하는 명절 속 어른은 포장이 번지르르한 선물 세트를 따로 사 보내지 말고 먹을 것만 딱 사는 편이 좋다고 한다. 어른 찾아 뵙는 날에 먹거리를 들고 가기 위해 명절 바로 전날 전통시장을 찾는다. 사람이 그야말로 많다. 전통시장 최고의 성수기다. 집에서 나설 때부터 예상하고 나선 일이다. 제이는 작은 손가방도 챙기지 않고 가벼운 몸으로 나섰고 우형은 장 본 것을 잘 들겠다고 바닥이 넓은 장바구니를 챙겨 나왔다. 시장 초입에 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주문한다. 고기를 패킹하는 동안 시장을 돌며 구경도 하고 필요한 것도 산다. 호박식혜가 맛있어 사고 싶으니 주저하다가 한 병만 산다. 모두 우형이 들고, 짐을 든 우형이 제이도 챙겨야 하기에 진짜 필요한 것만 사야 한다. 시장 나온 길에 당장 먹어야 할 것도 산다. 평소 같으면 두세 개 살 것을 한 개씩만 산다. 사람을 헤치며 길을 걸어야 한다. 시장의 좁은 길은 매장에 줄 선 사람과 보행하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제이와 우형은 손잡고 나란히 걸을 수 없다. 우형이 앞에 나서고, 우형이 앞에 나섰기에 생긴 공간을 활용하여 제이가 따라 걷는다.


시장에는 어르신도 많다. 길을 만들어가며 걷던 우형 옆에 한 어르신이 멈춰 선다. 어르신의 모자가 툭 떨어진다. 어르신이 고개를 한참을 들어 올려 우형을 올려다 본다. 우형과 가까이 있는 어르신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우형은 말없이 가만 섰다가 곧 앞으로 걸어 나간다. 제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형의 뒤를 따른다. 안 그래도 넓은 등, 큰 체격이 더욱 거대해 보인다. 시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크다. 큰 체격을 필두로 길을 헤쳐 나간다. 시장에서 누구와 붙어도 싸움이 안 된다. 제이의 걸음이 느려져서 우형과 거리가 생길수록 우형은 점점 커진다. 시장에서 가장 큰 거인이나 다름없다. 그때 우형의 어깨에 마주 오던 젊은 남자가 가격을 당했다. 마주 오던 젊은 남자가 욱하며 고개를 휙 돌린다. 고개 돌린 그 남자가 우형을 확인하더니 한없이 작아진다. 고개를 푹 숙인다. 체념의 한숨 어린 감탄사를 내뱉고 가던 대로 길을 가버린다. 우형이 만든 공간에서 걷던 제이는 어리둥절하다. 넋 놓은 듯 점점 천천히 제이는 걷는다.


우형에게서 떨어져 걷는 제이는 모르는 사람들을 비집으며 걷고 있다. 안정적 공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당황스러운 제이는 걸음이 산만해진다. 이러다가는 곧 넘어진다. 저 앞에 고기를 주문한 정육점이 보인다. 제이는 서둘러서 그러나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걷는다. 다시 우형 옆에 서게 된다. 주문한 고기를 받아 든 우형은 넓은 장바구니에 장본 것을 다 챙겨 넣는다. 한 손에 여유가 있는 우형이 먼저 손을 제이에게 내민다. 제이는 그 어느 때보다 우형에게 가까이 붙어서 손을 잡는다. 둘은 걷는다.


=============

내 글을 읽은 강사 쌤(이영훈 소설가)은,

 3인칭 표현보다 1인칭 사용을 권장했다.

나는 글 속에 등장하는 내게서 약간은 거리감을 두며 객관성을 부여하고 싶다. _ 심각하게 내 문제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우형이처럼 내가 다 처치해줄게~’

는 우리 사이에 웃으며 꺼내는 농담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플루트 연습, 이곳에서 더 하지 못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