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밑에서 잠들던 아이가 공무원이 되기까지
"리안. 너 이제 한글하고 엑셀 잘하지? 선생님이 논문 발표 해야 하는데 좀 도와줄래?" "아니요. 교수님, 교수님 수업에서 한글 하고 엑셀 안 했잖아요. 우리 피아노만 쳐서 제가 지금 한글, 엑셀 강의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좀 그런 거도 수업에 넣어주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광역자치단체의 지방행정서기다. 4년을 지나 5년 차로 넘어가는, 마냥 신입은 아니지만 아직은 뭣도 모르는 행정 8급. 나의 전공은 피아노다.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음대까지 졸업했다. 그런 내가 왜 다시 한글부터 엑셀까지 머리를 싸매며 배워야 하는지, 그 기묘한 여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곰돌이에 색칠을 매우 잘하던 아이]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생이 그렇듯, 나도 여덟 살 때 집 앞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건반을 눌렀다. 콩쿠르에서 전체 대상을 휩쓰는 천재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제일 잘하는 게 하나 있었다. 선생님이 연습장에 그려준 곰돌이와 별에 까만색 색칠이 다 채워질 때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연습하는 것. 그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사교육 중 피아노학원을 가장 먼저 그만둘 때, 나는 피아노학원‘만’ 다녔다. 그러다 사춘기 즈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 말고, 나는 커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예고를 갈 거야."
음대 교수님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동네 학원에서 고작 한두 시간 피아노를 치던 중학교 3학년의 선언. 입시곡이 발표된 봄날, 엄마와 원장 선생님은 코웃음을 쳤다. 모두가 반대하는 그 상황에서 나는 투쟁을 하듯 일주일간 피아노 밑에서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하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랬나 싶지만, 당시의 나에겐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집념뿐이었다.
[6개월의 도박]
실기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단 6개월.
피아노학원 원장 선생님은 엄마에게 "불가능하니 걱정 마시라"며 안심시켰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이 어느 분야에나 많던 시절이라 예고 입시 역시 만만치 않은 경쟁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만난 입시 선생님조차 "정말 가능할까?" 의구심을 가졌고, 엄마는 내가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거라 믿으며 조건을 내걸었다.
"좋아, 하는 데까지 해봐. 대신 성적이 떨어지면 그날로 끝이야."
쇼팽 에튀드 한 곡과 베토벤 소나타 한 곡이 내 운명을 쥐고 있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신나게, 마음껏 쳤다. 하교 후 밤 12시까지 하루 6시간 넘게 건반을 두드렸다. 입시 선생님은 나를 보고 '스펀지 같다'라고 했다. 가르쳐주는 대로 흡수한다고 했다. 작은 손이 쇼팽의 음정에 맞춰 억지로 벌어지느라 손가락 사이가 찢어져 피가 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통증과 변해가는 손 모양이 좋았다. 일종의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백기를 든 부모님]
합격 발표 날 아침, 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꿈을 꾸고 서러워 펑펑 울었다. 엄마와 아빠는 "괜찮다"며 억지로 나를 달랬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합격입니다."
놀랍게도 단 6개월 만에 예고 합격 통지서를 거머쥐었다. 합격 소식을 확인한 나는 부모님을 향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엄마와 아빠는 얼굴이 시뻘게지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해 나의 공부 성적은 전교 10% 안이었고, 결국 부모님은 내 집념 앞에 백기를 들었다.